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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죽암 뿔소라축제, ‘1000명’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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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죽암 뿔소라축제, ‘1000명’보다 중요한 것

28~29일 이틀간 1000명 관광객…작은 어촌마을의 ‘큰 축제’
주역 대부분 60세 이상 주민…성공 뒤 가려진 땀과 희생
몸집 키우기보다 주민 부담 줄이고 ‘죽암다움’ 살려야
궂은 날씨 속에서도 불을 밝힌 죽암 작은 뿔소라축제. 비에 젖은 행사장과 바닷가를 배경으로 주민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축제를 즐기고 있다. 사진=조성출기자이미지 확대보기
궂은 날씨 속에서도 불을 밝힌 죽암 작은 뿔소라축제. 비에 젖은 행사장과 바닷가를 배경으로 주민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축제를 즐기고 있다. 사진=조성출기자
울릉도 북면 끝자락의 작은 해안마을 죽암이 모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다.

평소라면 파도 소리와 바닷바람이 마을을 채웠을 시간, 골목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주민들이 마련한 먹거리 공간에는 사람들이 둘러앉았고, 작은 마을에는 웃음과 이야기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28일부터 29일까지 이틀간 열린 제3회 죽암 작은 뿔소라축제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상주 주민이라고 해봐야 14가구 20여 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다. 그런데 이틀 동안 주최 측 추산 관광객과 주민 등 1000명 안팎이 죽암을 찾았다.
단순 계산으로도 마을 주민 한 명당 수십 명의 손님을 맞은 셈이다.

더구나 첫날에는 궂은 날씨까지 겹쳤다. 그럼에도 축제장을 찾는 발길은 쉽게 끊이지 않았다. 죽암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축제가 세 번째를 맞으면서 조금씩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다.

하지만 축제가 끝난 지금, ‘1000명이 다녀갔다’는 숫자에만 박수를 보내고 끝내서는 안 된다.

축제가 성공적이었다면 이제는 그 성공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 중심에는 죽암 주민들이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축제를 실질적으로 준비하고 운영한 주민들의 연령대가 대부분 60세 이상이라는 점이다.

죽암마을 해안가에 마련된 먹거리 공간에서 관광객들이 뿔소라축제를 즐기고 있다. 작은 어촌마을의 일상 공간이 축제 기간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는 소통의 장으로 변했다.사진=조성출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죽암마을 해안가에 마련된 먹거리 공간에서 관광객들이 뿔소라축제를 즐기고 있다. 작은 어촌마을의 일상 공간이 축제 기간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는 소통의 장으로 변했다.사진=조성출기자

이틀간의 축제, 주민들에게는 ‘이틀짜리’가 아니었다. 관광객에게 축제는 28일과 29일, 이틀간의 행사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축제는 이틀짜리가 아니다.

행사 전부터 손님들에게 내놓을 음식을 준비하고 재료를 챙겨야 한다. 행사장 곳곳을 정리하고 부족한 것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축제가 시작되면 관광객을 맞고 음식을 만들고 나르고 치워야 한다.

손님이 몰리면 잠시 앉아 쉴 여유조차 줄어든다.행사가 끝난 뒤에는 다시 뒷정리가 기다린다.

관광객은 즐거운 추억을 안고 돌아가지만 주민들은 축제 전후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을 몸으로 감당해야 한다.

그런 일을 대부분 60세가 넘은 주민들이 맡았다.그래서 ‘20여 명의 주민이 1000명의 손님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단순한 미담으로만 소비해서는 곤란하다.
그 숫자에는 주민들의 땀과 노동이 함께 들어 있다.

‘주민이 직접 만드는 축제’라는 말은 아름답다. 하지만 주민들의 희생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축제라면 오래갈 수 없다.


죽암 작은 뿔소라축제가 세 번째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지금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도 바로 이것이다.

‘내년에는 관광객을 몇 명 더 불러올 것인가’가 아니라 ‘주민들이 지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축제를 계속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1000명이라는 성과, 동시에 던져진 질문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관광객 1000명은 대단한 숫자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14가구 20여 명이 살아가는 죽암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1000명이 찾아왔다는 것은 그만큼 축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동시에 작은 마을이 감당해야 할 부담 역시 커졌다는 의미다.

방문객이 늘어나면 먹거리와 좌석부터 주차, 화장실, 이동 동선, 안전관리까지 챙겨야 할 일이 많아진다.

축제 규모가 커질수록 주민들이 직접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도 늘어난다. 여기서 행정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렇다고 행정이 축제의 주인이 돼서는 안 된다.

죽암 작은 뿔소라축제가 가진 가장 큰 경쟁력은 행정기관이 만든 대형 이벤트가 아니라 작은 마을 주민들이 자신들의 삶과 바다를 바탕으로 만든 축제라는 데 있기 때문이다.

행정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주민들이 행사에 동원되는 방식으로 바뀌는 순간 죽암축제 특유의 소박함과 진정성이 사라질 수 있다.

주민에게는 축제의 방향과 콘텐츠를 결정할 주도권을 주고, 행정은 주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영역을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교통과 주차, 안전, 위생, 행사장 편의시설, 방문객 동선 관리 등은 전문적인 지원을 강화하고, 주민들은 죽암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먹거리와 이야기, 체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역할을 나누는 것이다.

주민은 축제의 주인이 되고 행정은 주민이 지치지 않도록 뒤에서 받쳐주는 것.


죽암축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한 원칙이다.

60대 이상 주민들, 약점 아닌 죽암의 ‘이야기 자산’ 주민 대부분이 60세 이상이라는 현실을 단순히 축제의 약점으로만 바라볼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들이 살아온 시간이 죽암에는 다른 지역이 흉내 낼 수 없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오랫동안 죽암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 죽암마을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바다가 거칠었던 날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뿔소라는 어떻게 잡고 어떻게 손질했는지, 집집마다 어떤 방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지….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생활의 기억이다.

축제의 경쟁력은 바로 이런 곳에서 찾아야 한다.

60대와 70대 주민들에게 무거운 짐을 나르게 하고 하루 종일 음식 장사를 맡기는 것이 주민 참여의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

대신 그들의 경험과 기억을 관광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만들어줄 수 있다.

주민이 들려주는 ‘옛 죽암 이야기’, 뿔소라 손질법과 음식 이야기, 어촌생활 이야기 등을 작은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는 방법도 있다.

고령 주민의 육체적인 노동은 줄이고 삶의 경험은 축제 콘텐츠로 키우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고령화는 축제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죽암만이 가진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뿔소라를 먹고 끝나는 축제여서는 안 된다. 축제의 이름은 ‘뿔소라축제’다. 그렇다면 관광객들이 축제를 떠날 때 적어도 ‘죽암 뿔소라’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는 기억하고 돌아가야 한다.단순히 뿔소라를 먹고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축제라면 다른 지역의 수산물축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죽암에서 뿔소라축제를 하는지, 울릉도 뿔소라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죽암 사람들은 뿔소라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줘야 한다.
먹거리에 이야기가 더해져야 비로소 관광 콘텐츠가 된다. 뿔소라 손질이나 시식 프로그램을 비롯해 어촌생활 체험, 주민과 함께하는 마을 이야기, 해안 풍경을 활용한 걷기 프로그램 등 죽암의 공간과 생활문화를 결합할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특히 죽암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축제를 연결하는 고민도 필요하다.

관광객이 축제장에 와서 음식만 먹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걷고 주변 경관을 둘러보며 죽암에서 몇 시간이라도 더 머물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축제가 지역관광으로 연결된다.

유명 가수보다 ‘죽암 사람’을 보러 오는 축제로 지역축제가 어느 정도 알려지기 시작하면 흔히 비슷한 길을 걷는다. 무대가 커지고 공연 프로그램이 늘어난다. 더 유명한 가수를 부르고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려 한다. 그러면서 축제의 성공 여부도 방문객 숫자로 평가하게 된다. 하지만 죽암은 그 길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대형 축제와 규모로 경쟁해서도 안 된다.

20여 명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축제가 수천, 수만 명을 불러들이는 행사를 흉내 내는 순간 오히려 죽암의 장점이 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이 유명 가수를 보기 위해 죽암에 오는 것과 죽암이라는 마을을 만나기 위해 오는 것은 전혀 다르다.

공연이 끝나면 떠나는 관광객보다 죽암의 바다와 뿔소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오는 관광객 한 사람이 더 중요할 수 있다.그래서 축제의 몸집보다 색깔을 키워야 한다.

‘울릉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작은 마을잔치.’ 그것이 죽암 뿔소라축제가 지향해야 할 경쟁력이 아닐까.

울릉 관광에도 죽암의 실험은 의미가 있다. 죽암축제의 가능성은 한 마을의 행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울릉 관광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울릉도에는 이름난 관광지가 많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유명 관광지를 차량으로 이동하며 둘러보고 떠나는 관광만으로는 작은 마을까지 관광 효과를 확산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관광객이 마을에 들어가 주민을 만나고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듣고 시간을 보내야 관광이 주민들의 삶과 연결된다.

죽암 작은 뿔소라축제는 거대한 관광시설이 없어도 작은 마을 자체가 하나의 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바다가 있고 뿔소라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새로운 것을 억지로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죽암에 있는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야기로 엮는다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죽암의 실험은 울릉도 다른 작은 마을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각 마을이 가진 음식과 풍경, 역사와 사람의 이야기를 발굴한다면 울릉 관광의 무대가 유명 관광지 몇 곳에서 섬 곳곳의 생활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몇 명 왔나’보다 ‘주민이 얼마나 덜 힘들었나’를제3회 죽암 작은 뿔소라축제는 끝났다.

1000명 안팎이 찾았다는 기록도 남았다. 하지만 축제가 남긴 가장 중요한 성과를 숫자 하나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내년 제4회 축제가 열린다면 이제 다른 질문도 함께 던져봤으면 한다.

관광객이 몇 명 더 늘었는가.

그 질문보다 먼저 축제를 준비한 60세 이상 주민들의 부담은 얼마나 줄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외부와 지역의 젊은 인력은 얼마나 참여했는가. 주민 몇 사람에게 일이 집중되지는 않았는가. 관광객은 죽암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가. 축제를 통해 죽암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축제가 끝난 뒤 다시 죽암을 찾는 사람은 얼마나 늘었는가.

이런 숫자들이 오히려 작은 마을축제의 성패를 더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 무엇보다 축제 때문에 주민들이 행복해야 한다.

관광객에게는 즐거운 이틀이었지만 주민들에게 몇 주 동안 감당해야 하는 고된 노동으로만 남는다면 지속가능한 축제라고 말하기 어렵다.

주민이 축제를 기다려야 관광객도 다시 축제를 기다린다. 죽암의 작은 뿔소라축제가 이제 세 번째 걸음을 마쳤다.

20여 명이 1000명의 손님을 맞았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 필요한 것은 2000명, 3000명을 목표로 숫자를 키우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20여 명의 주민이 내년에도 기꺼이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을 맞을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들의 자녀와 젊은 세대가 함께 축제에 참여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죽암축제가 닮아야 할 것은 다른 유명 축제가 아니다.

죽암의 바다와 뿔소라, 그리고 그 바다를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관광객 1000명이 다녀간 뒤 마을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축제가 던진 질문은 남았다. 관광객을 위한 축제이기 전에 주민들이 행복한 축제인가. 그 질문에 해마다 조금씩 더 좋은 답을 내놓는 것.
그것이 제3회 죽암 작은 뿔소라축제가 남긴 성과를 제4회, 제5회로 이어가는 가장 확실한 길일 것이다.


조성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c913@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