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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찰스 화이자, 비아그라 신화 만든 바이오 산업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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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찰스 화이자, 비아그라 신화 만든 바이오 산업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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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찰스 화이자, 비아그라 신화 만든 바이오 산업 선구자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 경제학 박사] 화이자는 사촌 사이이던 찰스 화이자와 찰스 에하트가 공동으로 창업했다. 둘은 독일의 루드윅스버그에서 태어났다. 에하트는 1821년생이다. 화이자는 그보다 3년 늦은 1824년 출생했다. 1840년대 후반에 기회의 땅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했다.

화이자는 독일에서 약사수련생 과정을 이수한 화학도이다. 에하트는 제과점의 제빵사 출신이었다. 둘은 그 경험을 살려 식품첨가물을 만들어 내는데 주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막 시중에 나돌던 산토닌이라는 구충약을 접했다. 맛이 너무 써 제대로 삼킬 수 없었다. 구충약을 덜 고통스럽게 먹을 방법은 없을까 궁리하던 중 약의 겉 표면에 단맛의 식품첨가물을 바르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산토닌 당의정이다. 의약품 역사상 최초의 당의정이다. 이 당의정 만드는 기술을 토대로 1849년 뉴욕의 브루클린에 회사를 세웠다. 상호는 '찰스화이자 앤 컴퍼니‘이다. 지금까지도 화이자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브루클린의 붉은 벽돌 건물이 최초의 본사사옥이다. 당의정은 인기를 끌었다. 제약회사들이 앞 다투어 약에다 단맛을 덧씌우는 화이자의 기술을 사갔다.

남북전쟁이 터지면서 방부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군인들의 식량을 썩지 않도록 하는 방부제는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갔다. 당시 병사용 빵에 들어가는 방부제는 대부분 화이자 제품이었다. 전쟁 와중에 큰돈을 벌었다.
전쟁이후 청량음료 붐이 일어났다. 화이자는 열대과일에서 구연산을 추출해 청량음료 업체에 납품했다. 청량음료에 본격적으로 단맛이 들어가는 데에도 화이자가 기여한 것이다.

화이자와 에하트는 미국 이민을 온 후에도 고국인 독일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당시 유럽의 앞선 기술을 배우는 데 공을 들였다. 화이자의 초기 식품첨가물의 기술은 상당부분 유럽으로부터 들여온 것이다. 화이자는 부인도 독일과 미국을 오가는 배에서 만났다. 에하트는 화이자의 여동생과 결혼했다. 둘은 사촌간이면서도 또 처남매부사이의 인연까지 맺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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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찰스 화이자, 비아그라 신화 만든 바이오 산업 선구자


화이자의 사업철학은 ‘시장이 원하면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기술을 만들어 놓고 시장에다 그 기술을 맞추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시장의 필요를 예의주시하다가 그에 맞춘 기술을 개발해낸다는 것이 화이자의 정신인 것이다. 당의정과 방부제 그리고 구연산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제품은 이 같은 기업이념을 구현한 셈이다.

둘의 지분은 50대 50이었다. 사후에 회사가 두 쪽이 나지 않도록 누구든지 먼저 죽으면 그 지분을 시가로 생존해 있는 다른 한쪽에 무조건 판다는 계약을 맺었다. 1891년 에하트가 먼저 세상을 떴다. 에하트 유가족들은 생전 계약에 따라 회사의 지분을 모두 화이자에게 넘긴다. 이후 화이자라는 기업은 화이자 가문으로 내려간다. 1인 오너가 된 찰스 화이자도 3년 후인 1894년 타계한다.

장남인 찰스 화이자 주니어는 사업에 별 관심이 없었다. 여우 사냥과 파티를 더 즐겼다. 결국 경영권은 둘째인 에밀레 화이자로 넘어간다. 1910년 제임스 큐리에가 설탕을 발효시켜 구연산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곧장 화이자로 찾아갔다. 에밀레 화이자는 바로 그 가치를 알아보고 거액을 들여 설탕발효기술을 사들인다. 개발자인 큐리에도 스카우트했다. 그러고는 대량생산을 시작했다. 값비싼 열대과일 대신 설탕에서 대량으로 뽑아내는 구연산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1930년대까지 전 세계 구연산 시장을 화이자가 석권하디시피 했다. 그 구연산으로 화이자는 초대형 기업의 길을 열었다. 설탕 발효는 비단 돈뿐만 아니라 단순한 식품첨가물 회사에서 본격적인 화학기업으로 변신하는 교두보가 되기도 했다.

화이자는 구연산 대량생산으로 번 돈으로 1930년부터 본격적으로 약을 만들기 시작한다. 비타민을 제조한 것이다. 이 또한 당시 소비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던 것으로 시장이 필요로 하면 화이자는 나선다는 창업이념을 또 한 번 발휘한 것이다. 비타민의 개발로 화이자는 제약회사로 한발 더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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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찰스 화이자, 비아그라 신화 만든 바이오 산업 선구자


화이자는 해마다 수천 명 씩의 군 제대자들을 채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남성이 군을 거치는 한국과 같은 징병제 국가에서는 군 출신 채용이 당연할 수 있지만 모병제를 채택하는 미국에서 퇴역 군인 집중 채용은 그리 흔치않다. 화이자가 군인들을 선호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화이자는 수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군인들과 함께 커왔다. 군인들 때문에 성장한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약업계의 경쟁업체인 머크(Merck)가 MBA들을 대거 고용해 판매현장으로 내보냈을 때 또 다른 경쟁업체인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수백 명 약사를 판매원으로 파견하여 선풍을 일으켰다. 업체가 프로모션 경쟁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화이자는 퇴역 군인들을 앞세워 인기를 끌었다.

화이자의 역사는 18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년 후인 1861년에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일어나자 군인들의 식량이 문제가 됐다. 대부분의 음식이 더운 날씨 탓에 이내 상해버리는 바람에 골치를 앓았던 것이다. 썩어가는 식량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바로 화이자였다.

화이자는 방부제를 개발해 군에 납품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뉴욕에 기반을 둔 화이자는 북군 쪽의 편이었다. 화이자의 방부제에 힘입어 북군은 음식걱정을 덜고 싸울 수 있었다. 그 공으로 종전 후 포상을 받기도 했다. 전쟁 이후 북군 세력들이 집권하면서 화이자는 승승장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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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가 퇴역군인들을 내세우는 것은 애국심을 자극하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다. 군인들을 통해 화이자는 나라가 어려울 때 앞장서왔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화이자의 애국심 호소전략은 약사나 MBA를 동원한 경쟁업체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그만큼 화이자는 미국사람들에 국민기업 또는 애국 기업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김대호 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