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편집장 "투자자산 될 수 있어도 결제수단으로는 부적합"

논란의 핵심은 비트코인이 ‘투자자산’이냐 ‘결제수단’이냐는 것. 바꿔 말하면 비트코인이 ‘투자수단’을 넘어 ‘화폐’로서도 활용될 수 있느냐는 것.
적어도 비트코인이 투자자산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비트코인 가격이 최근 1주간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수준으로 요동친 것이 투자자산임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
그러나 화폐로서 쓰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많이 엇갈린다. 이런 가운데 비트코인은 ‘본래부터 화폐로 쓰일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지적이 글로벌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서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가격 올라 유통될 수 없다면 화폐 아니다(?)
이 같은 주장을 제기한 주인공은 FT에서 미국 경제 담당 편집장을 맡고 있는 브렌던 그릴리.
경제전문 통신사 블룸버그통신 및 영국 유력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자 출신의 그릴리 편집장은 22일(현지시간) 올린 기사에서 비트코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비공식 인터넷 속어로 쓰이는 'HODL'를 비트코인의 정체성과 직결해 비트코인이 화폐로 쓰이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HODL는 주식을 계속 보유하는 것을 뜻하는 ‘HOLD’의 오타로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고 있더라도 나중에 더 오를 가능성을 고려해 더 많은 수익 창출을 노리고 장기적으로 팔지 않고 보유하는 것을 의미하는 암호화폐 투자 전략이다.
그릴리 편집장은 “비트코인을 보유해놓고 팔지 않으면 다이아몬드를 (안전자산으로) 팔지 않고 장기적으로 보유해놓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유하면서 “HODL 전략을 통해 보유한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 투자한 사람은 결국에 부자가 되는 것이 맞지만 그 비트코인이 (화폐처럼) 유통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가격이 너무 올라서 (결제수단으로) 쓸 수 없는 자산이 어떻게 화폐로 쓰일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비트코인 발행량과 그레셤 법칙
그릴리 편집장은 가상화폐에는 통화 발행과 유통을 제어하는 중앙은행은 없지만 발행량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지난 2009년 개발한 사카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총발행량을 2100만개로 설계했고 앞으로 2140년께면 마지막 비트코인의 채굴이 끝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는 것.
발행량을 묶어 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비트코인의 희소가치가 영원히 유지되도록 하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그릴리 편집장은 지적했다.
거래수단으로 시중에서 쓰이는 화폐는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추가로 발행할 수 있는 반면, 비트코인은 궁극적으로 거래수단이 아니라 희소가치를 극대화시킨 투자수단으로 설계된 자산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은 비트코인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그레셤의 법칙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표현은 경제 체제 내에서 귀금속으로서 가치가 서로 다른 태환 화폐(금화와 은화 따위)가 동일한 화폐가치로 유통되는 경우 원래 가치가 작은 화폐, 즉 은화가 결과적으로 더 많이 유통돼 원래가 가치가 컸던 화폐, 즉 금화는 쓰이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는 뜻이다.
그릴리 편집장은 “비트코인의 총발행량이 예정돼 있다는 것은 희소 가치가 영구적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도록 비트코인이 애초부터 설계됐다는 의미”라면서 “이는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것이 이득인 비트코인이 화폐처럼 시장에서 유통되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트코인 발행량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해야만 가능한 일”이라며 회의적으로 내다봤다.
이혜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