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원자번호 23번 금속' 바나듐, 기억 능력 발견...'제2 컴퓨터 혁명' 부르나

공유
1

[초점] '원자번호 23번 금속' 바나듐, 기억 능력 발견...'제2 컴퓨터 혁명' 부르나

바나듐이 인간의 뇌처럼 외부 자극을 기억하는 과정을 이미지로 연출한 모습. 사진=BGR이미지 확대보기
바나듐이 인간의 뇌처럼 외부 자극을 기억하는 과정을 이미지로 연출한 모습. 사진=BGR

'이산화바나듐(VO2)'. 원자 번호 23으로 단단하고 연성과 전성이 뛰어난 전이 금속이다.

자연에서는 순수한 형태로 발견되지 않고 바나듐 화합물이 갈연광을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광물이나 석유를 비롯한 화석 연료에 뒤섞인 채로 발견된다. 인공적으로 순수한 형태로 분리할 경우 표면에 산화 피막을 형성해 그 이상의 산화를 막는 것으로 알려진 회백색 금속 원소다.

대개의 금속이나 강철보다 단단하며 염기, 황산, 염산 등의 부식 작용에 대한 저항성이 강한 물질이어서 현재 세계 생산량의 약 85%가 차축, 자전거 프레임, 기어 등에 들어가는 바나듐강을 만드는데 주로 이용된다.

지금까지는 이 정도로만 용도가 알려진 바나듐이 현재 반도체 원료로 쓰이는 규소(실리콘)를 대체하는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연구 결과를 최근 스위스 연구진이 얻어내 전세계 관련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이 연구에는 포스텍 신소재공학과의 손준우 교수와 최시영 교수도 참여하고 있어 주목된다.

◇스위스 연구진, 바나듐 기억 능력 지닌 것 확인


2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과학 전문매체 BGR 등 외신에 따르면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EPFL)에서 엘리슨 마티올리 교수 등이 중심이 돼 구성된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에 최근 올린 연구 논문에서 바나듐이 바로 전 외부에서 들어온 자극을 온전히 기억할 수 있는 놀라운 성질을 지녔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는 바나듐에 외부 자극에 대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면서 비록 우연이지만 이같은 사실이 확인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이들은 설명했다.
EPFL은 '유럽의 MIT'로 불리는 스위스 유일의 연방대학으로 이번 연구에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차세대 반도체 소재를 연구해온 손 교수와 최 교수도 참여했다.

논문에 따르면 이들이 발견한 내용의 핵심은 바나듐이 실리콘을 대체할 수 있는 성질을 지녔을뿐 아니라 바나듐의 물질 구조가 이같은 성질을 지닌 채 매우 오랜 기간 지속되기 때문에 디지털 데이터를 저장하거나 처리하는 소재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바나듐이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환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수백번에 걸쳐 측정하는 과정에서 바나듐 물질 구조에서 기억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기존 반도체 능가하는 새로운 저장매체 출현 가능성 예고


BGR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발견된 더 중요한 사실은 바나듐이 섭씨 65도로 가열될 경우 전이 금속에서 반도체 형태가 급변하는 현상이 발견됐다는 점이다. 다시 바나듐의 온도를 상온으로 낮추고 나면 바나듐내 물질이 이전에 벌어진 활동을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 확인됐다는 것.

이번 연구를 주도한 마티올리 교수는 “바나듐 물질에서 전류가 흐를 때 인간의 뇌가 작동하듯 경로를 기억하고 다음 단계를 예상하는 듯한 현상을 확인했다”면서 “바나듐 샘플이 약 3시간 길이의 외부 자극을 기억하는 것으로 측정됐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반도체처럼 바나듐에도 메모리 기능이 있음을 발견했다는 뜻이다.

그는 “메모리 기능이 있다는 것은 바나듐의 물질 구조 자체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바나듐 같은 금속 물질에서 뇌처럼 기억하는 현상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란 점에서 놀라운 발견”이라고 설명했다.

마티올리 교수는 “바나듐 내의 물질 상태가 급변하는 현상은 인간의 뇌에서 뉴론이 활동하는 것을 연상케 할 정도”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결과가 관련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이유는 기존 반도체보다 월등한 성능을 가진 새로운 형태의 데이터 저장매체가 탄생할 수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마티올리 교수는 “0과 1의 이진법 입력방식을 가진 기존 컴퓨터의 반도체와 달리 바나듐은 뇌처럼 기억하는 능력을 지닌 것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바나듐을 이용해 기존 반도체보다 용량은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속도는 훨씬 빠른 저장매체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