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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세계화 로드맵 앞세워 첨단 기술 '코리아 찬스'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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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세계화 로드맵 앞세워 첨단 기술 '코리아 찬스' 살려야"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요 첨단 기술의 '코리아 찬스'를 제고해야 한다. 사진은 SK하이닉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요 첨단 기술의 '코리아 찬스'를 제고해야 한다. 사진은 SK하이닉스. 사진=로이터
한국의 재세계화 참여가 늦는 요인은 무엇인가. 중국이 패권을 잡으면 우리 민주주의도 위협받는 만큼 미국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보다 대중 수출이 미국의 규제로 줄어드는 것을 더 우려하는 분위기와 세계 변화를 앞서 고민하는 스테이츠먼의 부재 등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의 패권 추구가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이유와 관련해서는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한 말이 유명한데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은 자국 내부에서도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에서도 불안을 느끼고 있어 세계 질서 자체를 전체주의로 바꾸길 원한다.’
요컨대 뼛속 깊이 권위주의적인 국가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동의를 못 받기 때문에 자국 체제 내에서도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고, 민주주의 국가들이 주도하는 세계에서도 자유주의적 규범들이 자국의 비자유주의적 체제를 위협하는 만큼 안전함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2012년 시진핑 집권 직후 공포된 정치 명령 ‘9번 문서(Document No.9)’를 보면 중국이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를 위협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대목이 엿보인다. “중국에 적대적인 서구 세력과 중국 내부의 반체제 인사들이 여전히 이념 분야에서 침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정부들이 자신들의 시민을 어떻게 보느냐에 있어서의 차이점들이 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있어 심대한 차이를 낳는다. 세계를 전체주의화하려는 중국의 위험한 욕망은 시진핑 체제의 특수성이 아니라 중국 자체가 전체주의 체제인 데서 말미암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배터리 등 주요 분야의 첨단 기술들을 확보함으로써 글로벌 패권을 장악할 경우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에 안전하지 않은 ‘기술 전제주의(tech-autocracy)’가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삼성·SK·LG 반도체 배터리 미국 공장서 생산 전략 추진


문제는 시진핑이 2017년 10월 당대회에서 2049년까지 글로벌 패권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중국의 첨단 기술력이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는 것이다. 중국 IT 기업인 화웨이는 2019년 9월 27일 미국 부품 하나 쓰지 않고 5G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하스는 ‘더 강한 국가’에서 2020년 미국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각각 20.94조 달러와 14.72조 달러를 기록했는데 미국이 기술 혁신에서 중국을 압도하지 못하면 2028년 양국 GDP가 역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기술 혁신이 성과를 내려면 늦다. 미국이 1월 13일 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첨단 기술들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는 재세계화에 본격 착수한 것은 이 때문이다. 기술 혁신과 함께 첨단 기술들이 중국으로 이전되는 것을 막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본 것이다.

바이든 미 행정부의 재세계화 본격 착수는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전면전으로 전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 지배하는 기술 전제주의 세계의 도래를 막기 위한 미국의 개전 선언에 일본과 대만, 네덜란드 등 첨단 기술 보유국들이 참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술핵 재배치·핵무장 위해 4월 정상회담서 제시 필요


일본은 1·13 미·일 정상회담에서 재세계화에 적극 참여하는 조건으로 IBM의 2나노 반도체 기술을 넘겨받기로 한 데 이어 대중 군사적 봉쇄도 돕는다는 명분으로 군사적 반격 능력의 자체 제고를 허용받음으로써 전쟁할 수 있는 국가의 지위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의 침공 위협에 맞서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대만의 대미 반도체 협력은 급속히 강화되고 있다. 대만의 비메모리 반도체 회사 TSMC가 2021년 미·대만 반도체 동맹 선언에 따른 대미 투자를 지난해 12월 당초보다 3배가 넘는 400억 달러로 확대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미 텍사스에 짓는 반도체 공장 투자금액인 170억 달러의 두 배가 넘는 TSMC의 투자 결정에 애플과 엔비디아, AMD 등 미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은 크게 환영하고 있다. TSMC와 삼성전자 간 점유율 격차가 더 날 것으로 전망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만은 대일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TSMC는 일본에도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데 이는 전기차로 급성장하고 있는 자동차 반도체 시장을 미 팹리스들과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과 연합해 삼성을 따돌리고 장악하겠다는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이 같은 역내 경제와 안보 질서 변화는 미국이 대중 대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는 재세계화의 주전선인 반도체 연합이 미·일·대만 3국 중심으로 구축되고 대중 군사적 봉쇄 협력도 이들 3국 간에 강화되고 있는데, 한국은 이들 두 전선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스테이츠먼의 관점에서 일본과 대만이 재세계화에 선도적 참여를 하게 된 요인을 주목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미국을 도와 중국의 패권을 저지하고 21세기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겠다는 아베의 유산을 기시다가 이어받은 결과 가능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졌다.

중요한 것은 대만 요인이다. 작은 섬나라가 비메모리 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요인을 알아야 대만이 미 주도의 반도체 연합의 중심으로 도약하고 중국의 침공 억제를 미국의 최우선 안보 과제로 만드는 데 성공한 배경도 파악된다.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서 한국 비중 대만·중국 앞서


대만의 반도체 신화는 케이 티 리(K. T. Li)라는 스테이츠먼 덕분에 가능했다. 1980년대 중반 경제장관이었던 리는 미 팹리스들의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모리스 창을 불러 자금 지원을 해 TSMC를 설립하게 했는데 이게 적중한 것이다.

대만과 달리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신화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기업가 정신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는 이 전 회장 같은 혁신적인 기업가도, 리 같은 스테이츠먼도 눈에 띄지 않는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A홀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2에서 LG에너지술루션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배터리가 사용된 물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서울 강남구 코엑스A홀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2에서 LG에너지술루션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배터리가 사용된 물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계 질서의 거대한 전환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늦는 것은 일본·대만과 달리 스테이츠먼과 혁신적인 기업가가 없거나 기회를 잡지 못해서일 수 있다. 대만에 리와 창을 이은 스테이츠먼과 기업가가 계속 등장해 파운드리 신화를 계속 쓰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중국의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SMIC가 성공 못 하고 있는 요인도 리 같은 스테이츠먼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TSMC의 성공 요인은 리가 중시한 실리콘밸리와의 협력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상호의존성을 위협으로 봤고 그 결과 SMIC는 TSMC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만약에 한국이 재세계화에 늦는 또 다른 요인이 중국에 반도체 공장들이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면 그건 기우다. 재세계화는 현 세계화를 유지하면서 반도체 등 첨단 기술의 대중 이전만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성과 SK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들이 중국으로 이전되는 것을 막는 데 주력하면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다. 현재 중국이 반도체에서 1위를 할 수 있는 분야는 중국 반도체 기업인 YMTC가 주도하는 낸드 메모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재세계화에 적극 참여하기 위한 대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현 미·일·대만 3국 중심의 반도체 연합은 물론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팅, 자동차 배터리 분야의 소자 연합에도 참여할 수 있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기술 혁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윤 정부의 올해 최대 과제가 재세계화 로드맵 수립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배터리 등 첨단 산업별로 중국에서 가동 중인 공장들의 점진적인 철수와 이들 공장의 미국으로의 단계적 이전 등의 로드맵 마련이 시급한 것이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앞으로 메모리와 비메모리 분야의 첨단 반도체 기술을 개발할 경우 이들 기술이 적용된 제품은 가급적 미국에 공장을 지어 생산한다는 재세계화 전략을 추진해야 TSMC와 일본의 라피더스 등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현재 윤 정부가 주요 첨단 산업별 재세계화 로드맵을 마련하는 데 주어진 시간적 여유는 2개월 정도다. 한·미 간에 5월 히로시마 G7 정상회담에 앞서 4월에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만큼 그 전까지 큰 프레임이 그려져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윤 정부가 재세계화에서 일본과 대만에 뒤처진 것에 주눅 들 필요는 없다.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 삼성과 하이닉스가 보유하고 있는 첨단 기술과 시장 점유율 등 전략적 가치가 대만의 TSMC와 일본의 라피더스 등보다 훨씬 앞서기 때문이다.

혁신적 기업가 탄생 위해 정치·기업문화 정착 필수


미 조지타운대에 따르면 칩 디자인과 지식재산권, 장비, 제조 등 반도체 전 공급망에서 미국은 39%, 한국은 16%, 대만은 12%, 중국은 6%를 각각 차지한다. 이는 한국이 대만보다 중국의 접근을 막아야 할 반도체 자산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에 따라 재세계화의 핵심 전선으로 부상하고 있는 자동차 배터리 분야에서 LG배터리가 보유한 첨단 기술도 마찬가지다. 현 미국 시장 점유율은 11%이지만 중국산 배터리의 수출이 감소할 경우 50%대로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사실은 미국이 중국의 접근을 차단해야 할 주요 첨단 산업들의 전략자산에서 한국이 일본과 대만에 앞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주요 첨단 산업별 연합 구축 시 한국이 빠질 경우 재세계화의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미국에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준비해야 하는 재세계화 로드맵이 중요하다. 4월 한·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배터리 등이 경제와 안보에서 한국의 생존과 발전에 기여하는 ‘코리아 찬스’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재세계화 로드맵 수립만큼 중요한 것은 미국이 중국의 군사적 패권 도전을 억제하는 데 있어서 한국이 대만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보다도 훨씬 중요한 전략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위치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윤-바이든 정상회담을 통해 설득하는 것이다.

2·1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요구한 한·미 핵기획그룹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이 4월 정상회담에서 재세계화의 적극 참여를 선언하더라도 전술핵 재배치는 물론 전술핵운용협의권을 달라는 요청도 미국이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윤 정부는 전술핵의 주한미군 기지 재배치와 더 나아가 자체 핵무장이 북한의 핵 공격 위협을 억제하는 데는 물론 중국의 역내 군사적 패권 견제와 심지어 대만 방어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재세계화 시대에 한국이 생존을 넘어 2050년대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배터리 등 주요 첨단 기술 패권을 확보함으로써 글로벌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스테이츠먼과 혁신적인 기업가들의 등장을 돕는 정치와 기업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교관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