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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무기' 中이 美앞서면 한국에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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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무기' 中이 美앞서면 한국에 위기

미국과 중국이 AI를 탑재한 무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미 펜타곤은 전쟁에서 AI 사용에 대한 새로운 윤리 원칙을 채택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과 중국이 AI를 탑재한 무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미 펜타곤은 전쟁에서 AI 사용에 대한 새로운 윤리 원칙을 채택했다. 사진=로이터
동아시아의 군사 패권을 좌우하게 될 인공지능(AI) 무기 개발 경쟁이 미·중 간에 격화되고 있다. 만약 중국이 2~3년 내 대만을 침공한다면 저지 여부는 미군이 중국군을 능가하는 AI 무기를 확보하고 있느냐에 달렸다. 이 때문에 바이든 미 행정부로선 중국의 AI 무기 우위를 저지할 ‘새로운 상쇄(a new offset)’가 될 반도체 신기술이 절실하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는 반도체와 AI가 미·중 패권 경쟁에서 갖는 이 같은 지정학적 중요성은 못 보고 있다. 오직 이들 기술의 경제적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 역내 질서 변화에 성공적 대응을 위한 의제와 전략 등의 담론이 부재한 ‘저담론 국가(low-discourse state, 低談論國家)’로 전락해 자칫 국망(國亡)의 위기에 처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새해 들어 이 같은 우려가 고조되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무엇보다 이들 첨단 기술과 관련한 주요 지정학적 변화들에 신속한 전략적 대응을 못 하고 있는 데서 말미암는다. 이들 변화를 대표하는 ‘사건’으로는 ‘챗GPT’ 붐, 미 반도체법의 시행 규정 구체화, 1월 13일 미·일 정상회담 이후 양국 간 글로벌 전략 협력 강화 등 세 개를 꼽을 수 있다.

먼저 짚어볼 것은 공개되자마자 뛰어난 답변 능력으로 사용자 수가 1억 명을 돌파한 챗GPT와 관련한 언론과 학계의 논의 수준이다. ‘우리도 빨리 챗GPT 같은 AI를 개발해 급성장하는 AI 시장을 잡아야 한다’는 의제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다. 이는 국내 담론 시장이 AI 기술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못 보고 그것의 경제적 이익만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정학적 중요성 못보고 AI경제적 이익에만 몰두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역내 군사 패권을 위해 AI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그래서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는 ‘AI 슈퍼파워’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도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AI 무기 개발이 시급함을 일깨워 주면서 AI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대한 국내 담론 시장의 무지를 드러내준다.

이 같은 무지는 미국이 첨단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봉쇄하기 위해 새해 들어 본격화하고 있는 재세계화(reglobalisation)에 한국의 동참이 늦는 배경의 일단을 보여준다. 국내 담론 시장이 미·중 군사 패권 경쟁이 AI 무기 개발 경쟁에 따라 결정될 만큼 치열한 데 대해 무지한 탓에 재세계화는 안중에 없고 AI의 이익론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AI의 3축(triad)은 데이터와 알고리즘, 컴퓨팅이다. 중국은 10년 전부터 군사 무기 체계의 지능화(intelligentisation)를 달성하라는 시진핑의 지시에 따라 AI 무기 개발을 위한 기술 개발과 관련 반도체 확보에 몰두해 왔다. 현재 데이터와 알고리즘에서는 미·중 간 우열이 불분명하지만 컴퓨팅에서는 미국이 아직 우위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중국군 소속 반도체 기업들이 AI 무기 체계의 대미 우위를 위해 미국에서 디자인되고 대만에서 제조된 비메모리 칩 구매를 계속해 오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해 이들 구매 계약 중 20% 정도만 미국의 수출 제한 규정을 받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새해 미국이 대중 반도체 수출과 기술 이전 제한을 위한 재세계화를 본격화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중국군이 AI 무기 개발을 서둘러 온 목적은 무엇보다도 미군의 대만해협 접근을 막는 데 있다. ‘반접근/지역거부(anti-access/area denial)’라는 군사 전략에 따라 대만해협을 비롯한 동중국해로의 미 항모와 잠수함, 전투기의 접근을 자동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지능과 자율성(autonomy)을 갖춘 AI 무기가 시급하다고 본 것이다.

미·중 간 AI 무기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데 대한 국내 담론 시장의 무지는 미국의 오해를 살 수 있는 또 다른 의제로 이어지고 있다. 미 반도체법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미국에서 생산된 반도체에 대한 세제 혜택 규정이 구체화되면서 중국에 공장을 둔 한국 기업들의 수출 감소가 우려되는 만큼 1년 더 예외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美반도체법 선제적 대응…재세계화 차원 접근해야


한국 기업들의 수출 감소가 우려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언론과 학계는 우려와 함께 정부와 반도체 기업들에 미 반도체법을 재세계화 차원에서 평가하고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때 반도체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해야 한다. 그래야만 실리콘밸리와의 협력이 중요한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 반도체법의 본격 시행 국면에서 한국이 대중 반도체 수출 감소 우려에만 골몰하는 것은 냉전 때 미국의 봉쇄로 대소 수출이 어렵다고 워싱턴에 항의하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국내 담론 시장으로선 미 반도체법이 중국의 전체주의 확산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신냉전의 승리를 목표로 한 재세계화의 일환임을 인식하는 것이 시급하다.

얼마 전 반도체 장비 강국들인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에 동참하기로 결정한 것도 재세계화를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대전략으로서 수용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대중 수출 감소를 감수하고 재세계화를 뒷받침함으로써 그 대가로 미국의 기술 지원을 받고 대미 수출도 늘린다는 비전을 갖는 것이 올바른 국가 전략인 것이다.

재세계화 성공은 일본보다 한국의 운명에 더 중요하다. 미국의 대중 기술 봉쇄가 실패해 중국이 AI 무기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면 미 해·공군은 대만해협 접근은 물론 서해 진입도 차단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되면 중국에 의한 대만 복속은 시간문제가 될 것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지원 속에 북한의 대남 핵 위협은 더욱 본격화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대만 복속에 성공한 뒤 북한의 대남 침공까지 지원하는 상황이 오면 한국이 정말 국망의 위기에 처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때가 오면 AI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외면하고 미 반도체법을 대중 수출의 위협 요인으로만 취급했던 것이 재세계화가 한국의 국가적 운명에 얼마나 중대한 것이었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 점에서 일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등에서 일본을 거의 따라잡았다. 하지만 대미 관계에서는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북핵 위협 문제만 상의하는 대상으로 입지가 축소돼 왔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그 역할을 확대하고 있는데 그것은 1·13 미·일 정상회담에서 재세계화에 앞장서기로 한 결과다.

미·일 협력은 반도체 기술·대만 방어·대러 견제 등 전방위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곧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난다. 일본의 역할이 동유럽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군사적 반격 능력 제고 허용, 2나노 반도체 기술 지원, 대만 방어를 위한 미 미사일 배치 등도 미·일 전략적 협력이 한·미 협력과는 수준이 다름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내 담론 시장은 물론 윤석열 정부조차 미국이 재세계화의 적극 참여에 대한 보답으로서 일본과의 대중 및 대러 협력을 강화하는 지정학적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미·중 경쟁을 정밀하게 읽지 못하고 신냉전의 결과에 국가 존망이 걸렸다는 것을 잊은 채 전체주의 진영의 눈치를 보면서 오로지 대중 수출만 중시하는 데서 말미암는다.

만약 오는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재세계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국은 미국에게서 북한의 핵 위협 문제 논의만 요청받는 ‘소(小)동맹국’의 지위에서 탈피하기 어렵다. 그렇게 될 경우 일본은 미국의 글로벌 파트너라는 ‘대(大)동맹국’ 지위 격상에 취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며 21세기 대동아공영권 실현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4월 정상회담에서 미·일 합의 수준의 재세계화 합의를 반드시 해야 한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표현으로 작성된 미·일 정상회담 합의 수준에서 하면 된다. “경제적 강압과 비시장 정책들과 관행들 같은 위협들에 맞서 생각이 맞는 파트너들 간에 반도체 등 결정적이고 부상하는 기술들의 보호와 증진을 위한 공급망을 구축한다.”

대미 관계서 일본과 격차…파트너로 적극 동참 필요


하지만 일본보다 늦은 만큼 재세계화 총론 합의만으로는 2대 대미 경제·안보 의제를 관철하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미국에게서 비메모리 반도체와 AI 등의 첨단 기술 협력을 이끌어내고 북한의 고조되는 핵공격 위협에 맞서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 핵무장의 묵인을 받아내기 위해선 주요 첨단 기술별 재세계화 지원 로드맵과 대만 방어 지원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한국이 재세계화 참여를 더 늦출 경우 주요 첨단 산업들에서 미국의 협력을 받지 못해 기술 혁신 경쟁에서 크게 밀릴 우려가 크다. 미국이 재세계화를 위해 주요 첨단 산업별로 구성하고 있는 소자 연합(mini-lateral coalitions)에서 계속 배제되면 미국의 기술 협력을 못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반도체 연합은 미·일·대만 3국 간에 구축된 모양새다.

한국은 역내 국가 전략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일본에선 미국의 글로벌 전략 파트너가 됨에 따라 반도체 강국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만은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지배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ICBM과 방사포 시험 발사 도발로 핵 위협을 높이는데도 여야와 정부는 여전히 재세계화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윤석열 정부와 담론 시장은 서유럽의 스테이츠먼들도 미국의 재세계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대중 봉쇄를 목표로 한 자유주의 진영의 경제 연합 설립 같은 의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는 중국이 전체주의 모델을 확산시키기 위해 추진해온 일대일로(一帶一路, BRI)에 맞서기 위해 ‘경제 나토’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교관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