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美 중소형은행, SVB 파산 후 예금 유출 역대 최대…1주일새 156조원

공유
0

[초점] 美 중소형은행, SVB 파산 후 예금 유출 역대 최대…1주일새 156조원

예금 유출로 경영 불안이 우려되는 퍼스트리퍼블릭.이미지 확대보기
예금 유출로 경영 불안이 우려되는 퍼스트리퍼블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9일부터 15일까지 미국 중소형 은행에서 1200억 달러(약 156조 원)의 예금이 유출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24일(현지 시간) 발표한 주간 상업은행 통계에 따르면, 1주일 동안 1200억 달러 유출은 역대 최대 규모다. SVB의 급격한 파산으로 예금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중소형 은행에서 대형 은행 등으로 예금을 옮기는 움직임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미 연준은 주간 단위로 미국 내 상업은행들의 대차대조표 현황을 집계하는데, 대형 은행은 총자산 상위 25위까지, 중소형 은행은 그 이하로 정의한다.

15일 기준 중소형 은행의 예금 잔액(계절 조정치)은 전주 대비 2.2% 감소한 5조4559억 달러(약 7092조2670억 원)로 집계됐다. 유출액은 1973년 이후 최대 규모이며, 리먼 쇼크 때의 감소율을 넘어섰다. 코로나19에 따른 미국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으로 불어난 예금 잔액은 2021년 11월 이후 수준으로 떨어졌다.

JP모건체이스 등 주요 은행의 예금 잔액은 10조7400억 달러(약 1경3962조 원)로 전주 대비 666억 달러(86조5800억 원, 0.6%) 증가했다. 한 미국 서해안 기업은 SVB가 파산한 지 며칠 후 예금을 미국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중견은행인 퍼시픽웨스턴은행에서 JP모건으로 옮겼다.

대형 은행들, "중소형 은행의 고객 유치 자제해달라"


JP모건은 13일 직원들에게 "자금이 부족한 금융기관의 고객 모집을 자제하자"고 공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에는 "계좌 개설을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예금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리서치 회사인 모닝컨설턴트가 16~17일 약 21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SVB 파산 이후 미국 성인의 16%가 예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른 금융기관으로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한 곳은 미국 전역에 사업을 전개하는 국법 은행이 36%로 가장 많았다.

영국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폴 애쉬워스는 "중소형 은행에서 빠져나간 자금의 절반 정도가 대형 은행으로, 나머지는 MMF(머니마켓펀드)와 채권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고 분석했다.

미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정책금리에 민감한 MMF의 수익률은 2월 4%대 후반으로 올라섰다. 0%대 예금금리와의 금리차 확대로 MMF의 매력이 높아진 데다 예금 불안이 겹치면서 MMF로의 자금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투자신탁협회(ICI)에 따르면 주간 MMF 잔액은 22일 기준 5조1300억 달러(약 6669조 원)로 최근 2주간 2300억 달러 이상(약 299조 원, 약 5%)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지난 23일 미 연준의 예금 보호에 대해 "필요하다면 추가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급속도로 확산된 금융불안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예금 이탈 움직임은 계속될 것으로 보여 은행들은 유동성 확보에 안간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연준이 12일 도입한 긴급대출 한도액 이용액은 22일까지 536억 달러(약 69조6800억 원)로 15일 기준(119억 달러, 약 15조4700억 원)에 비해 4.5배 증가했다. 기존에 마련된 '연준 대출'은 리먼 쇼크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용되고 있다.

'후순위 대부업체'에서도 자금 공급 급증


주택담보대출 등을 담보로 시중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부계 금융기관인 연방주택대출은행 시스템(FHLB)의 동향도 주목된다. 연준에 이어 '제2의 대출기관'으로서 금융위기 때 활용되며 지방은행의 중요한 자금 공급처로 활용되고 있다.

영국 바클레이즈(Barclays)의 조셉 애버트(Joseph Abbate)는 FHLB의 대출 잔액이 최근 1조1000억 달러(약 1430조 원)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한다. 리먼 사태 당시 최고치를 12% 웃돌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FHLB는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 이후인 13일부터 일주일 동안 총 3040억 달러(약 395조2000억 원)의 채권을 발행했다. 골드만삭스의 얀 하치우스에 따르면 2019~2022년 연간 발행액은 4000억~6000억 달러(약 520조~780조 원)였다. 지방은행의 자금 수요 증가를 반영한 조치로 보인다.

경영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중견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16일 발표에 따르면, 연준으로부터 약 1090억 달러(약 141조7000억 원), FHLB로부터 100억 달러(약 13조 원)를 차입했다. 예금이 유출되고 있는 퍼시픽웨스턴도 긴급 대출 한도를 포함해 연준과 FHLB에서 돈을 빌렸다.

미국 노무라증권의 아이치 우미노미야는 "은행들이 대출을 축소하는 국면이 올 것"이라며 "연준이 실시하는 미국 은행의 대출 태도 조사에서 3개월 전과 비교해 기업 대출 태도를 '엄격하게 했다'는 비율에서 '완화했다'는 비율을 뺀 비율이 3월에는 45%로, 코로나 사태를 제외하면 리먼 사태 이후인 2009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금융기관 유동성 우려가 장기화되면 은행들이 대출에 한층 신중해져 미국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