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폐기물로 항공유 생산 상업화 첫 성공 기업, SK 이노베이션과 제휴 확대
(미국 네바다주 리노=국기연 특파원) 미국 네바다주는 도박의 메카 라스베이거스로 유명하다. 그다음으로 큰 도시가 캘리포니아주에 인접한 리노(Reno)다. 두 도시 모두 사막 위에 세워졌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콜로라도 덴버를 거쳐 리노로 향하는 항공기에서 바라본 네바다주는 태고 이래 미개발지처럼 보이는 끝없는 사막의 연속이었다. 가끔 눈에 들어오는 크고 작은 산은 제대로 된 나무 한 그루 품지 못했다. 그렇게 버려진 땅으로만 여겨졌던 리노시 인근에 세계 최초로 생활 쓰레기로 합성 원유를 만드는 펄크럼 바이오에너지 시에라 공장이 우뚝 서 있었다. 이 공장은 쓰레기 매립지 인근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기에 네바다 사막의 한 자락을 차지했다.

짐 스톤사이퍼(Jim Stonecipher) 펄크럼 부사장은 ‘글로벌 이코노믹’을 비롯한 한국 기자단을 생활 쓰레기 선별 처리장(공급 원료 처리 시설, FPF)으로 먼저 안내했다. 이 시설 내부는 여느 쓰레기 처리 시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곳에서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컨베이어 벨트가 쉬지 않고 돌아가면서 쓰레기 분류 작업이 계속됐다.
돌멩이, 유리와 철 조각 등은 걸러지고, 종이와 목재 등 가연성 폐기물이 한 곳에 쌓였다. 이 폐기물이 색종이 조각처럼 잘게 잘려져 합성 원유의 원료인 ‘피드스톡’(feedstock) 더미를 이뤘다.
스톤사이퍼 부사장은 “웨이스트 매니지먼트(WM)를 비롯한 3개의 쓰레기 처리 기업들이 앞으로 20년 동안 이곳에 생활 폐기물을 실어다 주기로 계약돼 있어 피드스톡 원재료 확보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생활 폐기물 처리 시설 곳곳을 둘러보는 사이에 진한 폐기물 냄새가 옷과 살갗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 역한 냄새를 온통 뒤집어쓴 채 한국 취재단은 피드스톡이 이송되는 인근 시에라 공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공장에서 피드스톡에 산소를 주입해 고온, 고압에서 분해하고, 여기서 나오는 수소와 일산화탄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합성 가스인 ‘신가스(syngas)’가 만들어졌다.

에릭 프라이어 펄크럼 최고경영자(CEO)는 “신가스로 디젤, 휘발유 등 모든 종류의 교통 연료가 생산된다”고 설명했다.
프라이어 CEO는 “펄크럼이 지난해 12월 폐기물 가스화로 만든 합성 원유를 생산하는 시에라 공장을 세계 최초로 상업 가동했다”고 말했다. 프라이어 CEO는 “합성 원유가 교통 연료 대체유로 실제로 사용되고 있고, 이를 업그레이드하면 항공유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톤사이퍼 부사장은 “쓰레기 선별 처리장에서 피드스톡이 시에라 공장으로 이송되면 3일 안에 합성 원유 생산 작업이 종료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시에라 공장에서 항공유가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펄크럼은 이 공장에서 생산된 합성 원유를 지난해 12월부터 미국 정유사 ‘마라톤’에 전량 판매하고 있다. 마라톤은 이 원유를 다시 가공해 SAF를 만든다.

시에라 공장은 ‘피셔-트롭쉬(Fisher-Tropsch)’ 공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국제 사회에서는 최근 기후 변화에 대응하려고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해 탄소중립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인공 합성 연료 ‘이퓨얼’이 주목받고 있다. 이퓨얼은 전기 기반 연료(Electricity-based fuel)를 뜻한다.
이퓨얼은 약 100년 전쯤인 1925년에 독일에서 개발된 '친환경 기술' 피셔-트롭쉬 공법을 이용한다. 이는 수소(H2)와 일산화탄소(CO)로 구성된 혼합물에 고온, 고압으로 촉매 반응을 일으켜 액체 탄화수소가 만들어지는 공정을 말한다. 이것이 화학적으로 원유와 비슷해 합성 원유로 불린다.
시에라 공장은 겉모습만 보면 일반적인 석유 정제 시설과 비슷했다. 이 공장은 피드스톡 1t으로 63갤런의 연료를 생산할 수 있다. 이 공장은 한 해 생활 폐기물 50만t을 처리해 합성 원유 26만 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을 항공편으로 약 180회 왕복하는데 사용되는 연료량에 해당한다.
펄크럼은 시에라 공장을 시작으로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 영국 체셔 등에 10여 개의 신규 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시에라 공장 3배 크기의 게리 공장이 오는 2026년에 완공되면 이곳에서 생활 폐기물을 이용해 1000만 배럴의 합성 원유 생산이 가능해진다.
SK(주)와 SK 이노베이션은 펄크럼에 모두 8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SK 이노베이션은 펄크럼과 제휴해 SK 울산 콤플렉스에 SAF 생산 공정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SK(주), SK 이노베이션과 함께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 일본 항공(JAL), 홍콩 케세이 퍼시픽, 에어뉴질랜드 등 글로벌 항공사와 뉴질랜드 정부가 펄크럼에 앞다퉈 투자했다.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의 일환으로 많은 국가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넷제로)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항공업계도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연료 확보에 나서고 있다. SK 이노베이션은 지난 60여 동안 축적한 석유 화학 공정 기술을 바탕으로 폐기물 가스화 기반 합성 원유에서 더 큰 규모의 SAF를 확보해 글로벌 시장 공력에 나설 계획이다.
시장 조사업체 TMR에 따르면 세계 SAF 시장 규모가 2021년에 1억 8660만 달러였고, 그 이후 연평균 26.2%씩 증가해 2050년에는 402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강동수 SK 이노베이션 포트폴리오 부문장은 “세계적인 탄소 감축 비전 속에서 지속 가능한 항공 시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펄크럼과 협력을 적극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라이어 CEO도 “SK가 저탄소 연료 생산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펄크럼이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