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 기술과 희토류를 둘러싼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반도체 기술 수출을 제한하고, 중국은 이에 맞서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EU는 중국 EV가 유럽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의 EV 보조금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9월 13일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EU 의회에서 “글로벌 시장의 넘쳐나는 저렴한 EV 가격은 중국 정부 보조금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낮은 것이다”라며 중국을 겨냥했다.
중국도 흑연 수출 규제로 EU의 보조금 조사에 맞대응하고 나섰다.
경쟁은 새로운 경쟁 지점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AI 분야에 대해 중국의 추격을 제어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고, 중국은 자국 기업 보호 명분으로 자국에서 해외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경쟁은 양측이 서로의 약점을 공략하면서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중국은 미국 기술 제재에 맞서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제조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베이징과 공유하는 것을 제재했다. 2022년 10월부터 시행된 규제의 허점을 메우기 위해 미국 기업이 중국에 판매할 수 있는 반도체 종류를 더욱 줄였다. 마이크로칩과 컴퓨터 하드웨어 대기업들에 반도체나 반도체 관련 기술을 중국에 판매하는 일을 더욱 축소하도록 조치했다.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전쟁’은 2018년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때 시작돼 바이든 현 대통령 기간부터 더 강화되고 있다.
EU와 중국도 무역 긴장에 빠져 있다. EU는 권역 내 제품이 중국 시장에 더 많이 판매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중국은 자국 업계에 보조금과 막대한 정부 지원을 통해 시장 우위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에 EU는 저렴한 중국산 EV 홍수를 막기 위해 중국의 EV 보조금 조사에 착수했다. 풍력발전이나 태양광에서 중국의 도발에도 제재가 늦은 것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중국은 전기 및 전자제품에 필요한 희토류 세계 최대 보유국 지위를 활용해 서구를 압박하고 규제 수위를 낮추려고 맞대응하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제조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베이징과 공유하는 것을 제재하고, EU가 배터리 보조금 조사에 착수하자 중국도 보복에 나섰다. 지난 10월 21일 EV 배터리에 사용되는 흑연 수출을 제한했다.
CNN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12월부터 자국 광산 기업들에게 고순도, 고강도, 고밀도 버전을 포함한 합성 흑연 재료와 천연 편상 흑연 수출 허가를 획득할 것을 요구했다. 사실상 수출 통제 방침을 밝힌 것이다.
흑연은 EV 배터리, AI,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하는 중요한 원료로, 중국은 2022년 기준 세계 최고의 흑연 생산국이었으며 전 세계 생산량의 약 65%를 차지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미국 에너지부(DoE)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리튬의 60%, 코발트의 80%를 정제하고 있다. 흑연의 수출 제한에 이어 언제든지 나머지 필수 광물에 대한 수출 규제도 할 수 있다.
중국 상무부가 “국가 안보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라고 언급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흑연을 자국 기술 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자원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기술 수출 제한과 EU의 보조금 조사에 대해 중국 기술 산업 발전을 위협한다고 판단하고, 흑연 수출을 제한해 가격을 인상하고, 이를 통해 자국의 기술 산업 보호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것이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1990년대 중국 정부는 희토류를 전략광물 보호지역으로 선언하고 중국 기업과의 합작투자를 제외하고는 중국 내에서 해외 채굴과 희토류 가공을 금지했다.
이를 통해 중국 기업은 해외 노하우를 얻는 동시에 공급망에서 해외 경쟁을 차단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 왔다.
이에, 미국과 EU 등 주요 국가들은 중국 외에서 자원 공급망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EU, 중국의 상호 규제는 향후 기술과 공급망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을 암시하는 전조이며, 중국을 대체할 제3 세계 국가와의 조속한 협력이 관련 산업에 미칠 파장을 줄일 수 있는 안전장치임을 말해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