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전쟁 가능성을 기준으로 한 이른바 ‘지구 종말 시계’를 뒤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러시아 과학자로부터 제기됐다.
‘운명의 날 시계’로도 불리는 지구 종말 시계는 핵무기를 동원한 세계적인 전쟁의 발발이나 기후 변화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자연 재앙으로 인류 문명이 소멸할 위험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를 알릴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시계로 시곗바늘이 자정을 가리키면 인류가 종말을 맞는다는 뜻이다.
지난 1947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만든 이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핵실험이나 핵무기 보유국들의 동향과 감축 상황 등을 파악해 분침을 지정해 오고 있다.
BBC에 따르면 미국 핵과학자회가 지난 1월 기준으로 따진 결과 자정 90초 전으로 분침이 앞당겨졌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시계가 만들어진 이래 분침이 인류 종말에 가장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미국 핵 과학자가 당초 발표한 ‘인류 종말 시계’ 분침
다른 무엇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핵무기와 생화학무기의 사용 가능성이 커진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 탓이다.
그러나 13일(현지시간)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러시아의 한 물리학자가 미국 핵과학자회가 발표한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서 전 세계 과학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한마디로 분침을 뒤로 돌려야 하는 상황이 그사이 벌어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인류의 존망이 걸린 문제를 놓고 최근 새로운 주장을 내놓은 화제의 주인공은 러시아 출신의 물리학자이자 핵전문가로 유엔군축연구소(UNDIR)에서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하는 파벨 포드비그다.
그는 미국 핵과학자회 회원이자 지난 1995년 러시아의 핵무기 보유 실태를 연구 조사해 보고서를 내놓은 주역이기도 하다.
포드비그 연구원은 최근 미국 핵과학자회 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핵과학자회가 지난 1월 발표한 내용은 당시 기준으로는 잘못된 것이 없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달라진 핵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재 기준으로는 수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는 러시아가 핵무기를 전쟁에 투입할 가능성과 그에 따른 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게 고조됐고, 국제사회가 우려의 눈길로 예의주시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가 분침을 뒤로 돌려야 하는 이유로 제시한 근거다.
분침 뒤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
실제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에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1주년을 앞두고 행한 국정 연설에서 미국과 러시아 간 핵무기 감축 협정인 ‘뉴스타트’(New START·신전략무기감축협정)에 대한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푸틴은 “미국이 먼저 핵실험을 한다면 러시아도 핵무기 실험 준비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도 말해 국제사회를 긴장케 했다.
그러나 푸틴의 말은 위협으로 그쳤다는 평가다. 그리고 러시아와 미국이 핵전쟁 태세에 나섰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핵카드’를 내세워 우크라이나를 강력 지원해 온 미국을 강하게 견제하려는 일종의 레토릭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포드비그 연구원은 “러시아가 핵카드를 흘리기 시작하면서 국제사회도 오판하지 말 것을 러시아에 경고하는 등 적절히 맞대응하고 나서면서 핵전쟁의 발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상당 부분 수그러들었다”면서 “이에 맞춰 인류 종말 시계도 자정 90초 전에서 뒤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4개월이 지난해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 회의에서 가입국들이 낸 성명에서 ”핵무기의 사용은 국제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라며 러시아에 대해 한목소리로 경고하고 나선 것이 러시아발 핵리스크를 억제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