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살만은 도덕적인 비난을 막대한 석유 자원과 천문학적 돈으로 무력화하고, 국제정치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하여 중동, 미·중 관계, 글로벌 사우스 그리고 브릭스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는 우리와 경쟁한 2030 월드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도 압도적으로 우리나라에 앞선 득표력을 과시해 글로벌 사우스에서 영향력을 드러낸 바 있다.
석유의 힘과 외교의 기지
빈 살만 힘의 원천은 세계 석유 시장에서의 영향력이다. 그는 석유 권력을 활용하여 자신의 국제적 지위를 되찾았다. 세계 석유 시장에 대한 장악력은 언론인 카슈끄지 살해 의혹의 비난을 뚫고 사우디와 그의 권력을 재건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사우디는 전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둘째로 많은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감산을 포기하고 결심만 하면 언제든 미국을 추월하고 생산량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석유를 판매한 돈의 상당액은 빈 살만의 지갑으로 통하는 사우디 국부펀드로 들어간다. 1월 1일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국부펀드가 지출한 1240억 달러 중 사우디 국부펀드가 약 4분의 1을 차지했다.
전 세계 국부펀드를 추적하는 Global SWF의 예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사우디 국부펀드의 2023년 지출 규모는 전체 국부펀드 1238억 달러에서 무려 315억 달러를 차지했다. 이 돈이 고물가·고금리로 자금난에 봉착한 국가들에 빈 살만의 영향력을 키웠다.
왕세자는 석유의 힘과 돈을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오가는 교묘한 외교술도 사용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석유로 궁지에 빠뜨리는가 하면, 시진핑과 유대를 강화해 상호 투자를 확대했다.
최근 몇 달 동안 비록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그에 따른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인해 갑자기 중단됐지만,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이 중개하는 협상을 진행했고, 앙숙이던 이란과도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과거 누구도 이루지 못한 성취를 그것도 30대 중반에서 후반에 달성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포츠’를 활용해 국가의 이미지를 젊고 역동적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빈 살만의 지갑 속 돈으로 알려진 국부펀드로 PGA 골프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헤비급 복싱 토너먼트를 개최하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선수들을 자국 리그에 영입해 경기하도록 했다.
올림픽에서 월드컵까지 유치에 나서고 있으며, 지난 11월에는 마침내 월드 엑스포도 유치했다. 그것도 압도적인 다수의 회원국으로부터 득표했다.
모든 문은 열려 있지 않다
이런 성취에도 불구하고 빈 살만이 자신의 세계적 영향력을 확고히 하고 확장하려는 노력에는 장애물이 남아있다. 특히 반대 의견을 진압하려는 그의 독재 스타일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그는 참신하고 역동적이며, 스마트한 지도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2023년 4월 통계기관으로 유명한 스태티스타가 미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빈 살만은 미국인의 44%에게 알려져 있었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9%에 불과했다.
빈 살만은 그의 비전 2030계획을 성공시키겠다는 결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무모한 사업이라는 평가와 함께 글로벌 투자는 거의 없다.
특히, 빈 살만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자 석유 수출국의 입지를 악용해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지 않고 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가격 담합을 주도했다. 심지어 염치없게도 값싼 러시아산 석유를 사들이고 사우디의 석유를 비싼 가격으로 팔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무리한 감산 주도로 신망을 잃고 있다. 일부 산유국들은 감산에 반대하기까지 했고, 아프리카 2대 산유국인 앙골라는 감산에 대한 반발로 OPEC을 탈퇴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OPEC를 이끄는 빈 살만에게는 타격이었다.
현재 유가는 미국의 산유량 증가와 재생에너지 사용 증대, 석유 소비 감소 등으로 7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다.
빈 살만은 석유 자원과 막대한 돈을 앞세워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브릭스에도 가입했다. 그는 미국과도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등 신흥 경제대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미·중 갈등 속에 사우디가 독자적 노선을 견지하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브릭스 가입을 통해 석유와 달러 동맹을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중국과 위안화 거래 확대를 도모하는 등 현존 질서에 도전하는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2030년에 40대 후반이다. 2040년이 되면 50대 후반이다. 석유 자원 가치와 영향력이 점차 힘을 잃어가는 시간 속에서 그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빈 살만의 영향력이 석유와 돈이라는 무기와 그의 무모한 도전 자세에 의해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포브스가 지난달 4일 공개한 2023년 사우디의 GDP는 1조700억 달러로 19위였다. 빈 살만이 2030년까지 이 GDP를 얼마나 올릴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