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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AI칩 공급 대기기간 단축, '새로운 위기'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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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AI칩 공급 대기기간 단축, '새로운 위기' 징조

엔비디아의 고성능 AI칩 'H100'.  사진=엔비디아이미지 확대보기
엔비디아의 고성능 AI칩 'H100'. 사진=엔비디아

2024년 새해에도 인공지능(AI) 열풍이 계속되면서 엔비디아의 고공 행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수요 대비 공급 부족으로 제품 인도에만 최장 1년이 걸리던 엔비디아 AI 칩 공급 문제가 서서히 나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러한 공급 지연 기간의 단축이 엔비디아에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18일(현지 시간) IT 전문매체 WCCFtech, 마이드라이버 등은 글로벌 금융기업 UBS의 애널리스트가 보낸 투자자 메모를 인용해 고객들이 엔비디아 최신 AI 칩을 주문 후 납품받기까지 걸리는 대기시간인 리드타임(lead time)이 기존 8~11개월에서 최근 3~4개월로 크게 단축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AI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엔비디아 AI 칩에 대한 수요도 폭증했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리드타임도 최장 12개월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리드타임의 단축으로 엔비디아 고객들은 주문한 AI 칩을 좀 더 일찍 공급받게 되어 AI 관련 투자에 속도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리드타임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최종적으로 엔비디아 AI 칩을 만드는 대만 TSMC의 생산량 증가가 꼽힌다.

엔비디아의 AI 칩은 핵심 부품인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동일한 실리콘 기판에 통합해 하나의 AI 칩으로 만드는 TSMC의 첨단 ‘CoWoS 패키징’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이 공정을 보유한 곳이 TSMC뿐이고, 특정 공장에서만 가능한 공정이다 보니 엔비디아도 AI 칩 공급을 맘대로 늘릴 수 없었다.

TSMC 역시 지난해부터 CoWoS 패키징 공정의 효율을 높이고, 신규 설비를 증설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대만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TSMC는 올해 말까지 CoWoS 패키징 공정의 생산량을 지난해의 약 2배인 월 3만2000개까지 늘리고, 이후 월 4만4000개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즉 TSMC의 공급량이 늘면서 자연스레 리드타임 감소로 이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UBS는 오히려 리드타임 단축이 엔비디아에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리드타임이 천천히 줄어들지 않고 한 번에 대폭 감소한 것은 오히려 공급에 비해 엔비디아 AI 칩의 수요가 감소한 것의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UBS는 엔비디아가 그동안 밀렸던 주문 잔고를 정리하는 동시에, 더 많은 신규 주문을 받지 못하면 자칫 공급 과잉으로 오히려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수년 전 엔비디아는 암호화폐 채굴 붐이 한창일 때 무리하게 채굴용 GPU 생산과 공급을 늘렸었지만, 이후 채굴 시장이 갑자기 약화하고, 관련 투자 감소로 GPU 재고가 급증하면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엔비디아 AI 칩의 최대 수요처였던 중국 시장이 막힌 것도 리드타임 단축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까지 중국 AI 칩 시장에서 엔비디아는 약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고, 중국에서 거두는 매출만 글로벌 전체 매출의 약 20~25%에 달했다.

하지만 중국과 대립 중인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제재가 한층 강화되면서 지난해 10월부터 A100, H800 같은 고성능 AI 칩은 물론 A800, H800 등 중국향으로 성능을 조금 낮춘 AI 칩까지 모두 수출이 막혔다.

엔비디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정부의 성능 제한에 맞춘 신형 중국향 AI 칩들을 선보이고 지난달부터 공급을 시작했지만, 이들은 중국 고객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서 주문 및 판매가 신통찮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전체 공급 물량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던 중국으로의 수출이 줄면서 재고 여유가 생긴 것이 리드타임 감소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UBS는 리드타임 감소를 비롯한 이러한 지표들이 올 들어 벌서 주가가 40% 이상 상승한 엔비디아의 상승세가 점차 정점에 가까워졌음을 보여주며, 그 이후 한풀 꺾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UBS는 다소 불투명한 예측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 주가 전망을 현재 약 725달러에서 85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