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티노 경제의 급성장이 미국 경제와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최근 라틴계 기부자 협력체(Latino Donor Collaborative, LD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미국 라티노의 총 경제 생산량(GDP)은 3.6조 달러로, 세계 5위 규모 경제에 달한다. 이는 영국, 인도, 프랑스를 앞지르는 수준이며, 2027년에 독일까지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라티노의 놀라운 성장과 영향력을 말한다고 4일(현지시각) 악시오스가 보도했다.
LDC 보고서는 미국 정부 기관의 공식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UCLA와 캘리포니아 루터교 대학의 연구진이 함께 참여해 학술적 신뢰도가 높다. 또한, 웰스 파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 주요 금융기관들도 이 보고서를 인용하며 라티노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라티노 내부의 경제적 격차를 고려할 때 이러한 통계가 라티노 전체의 경제 상황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적한다.
라티노는 미국 인구의 19%에 불과하지만,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 실질 GDP 성장의 41%를 차지했다. 이런 경제적 성장세는 라티노의 급속한 인구 증가,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 교육 수준 향상, 높은 기업가 정신 등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2017년에서 2022년 사이 라티노 GDP의 연평균 성장률은 4.6%로, 중국(5.3%)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성장 중심에는 성공한 라티노 기업인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아마존 웹 서비스(AWS)의 CEO인 아담 셀립스키, 크래프트 하인즈의 CEO인 미구엘 파트리시오, 그리고 유튜브의 CEO인 수전 워치츠키 등이 있다. 이들은 저임금 노동자로 시작했던 부모 세대와 달리, 높은 교육 수준과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대기업의 수장으로 성장했다.
정치 분야에서도 라티노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현재 연방 상원의원 6명, 하원의원 47명이 라티노 출신이며, 2021년 취임한 미국 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최초의 라티노 대법관으로 주목받았다. 또한, 2024년 대선에 출마한 공화당의 론 데산티스 등 라티노 출신 후보들은 이 라티노의 정치적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라티노 유권자들의 표심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통적으로 라티노 유권자들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했으나, 최근 들어 이러한 경향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020년 대선에서 라티노 유권자의 약 59%가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에게 투표했고, 38%가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 하지만 2022년 중간선거에서는 라티노의 공화당 지지율이 39%로 소폭 상승했다. 이는 경제 문제, 치안, 이민 정책 등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변화는 특히 주요 경합주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경합주로 꼽히는 애리조나, 네바다, 조지아 등에서 라티노 유권자의 선택이 승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여겨진다. 이들 주에서는 경제 문제와 이민 정책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라티노 유권자들은 각 당의 관련 정책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은 라티노의 전통 지지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이민 개혁, 의료 보험 확대 등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공화당은 경제 성장, 중소기업 지원, 치안 강화 등을 내세우며 라티노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대하려 노력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라티노 유권자들이 단일 블록이 아니라는 것이다. 출신 국가, 세대, 교육 수준, 종교 등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 양당 모두 세분화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라티노 유권자들의 다양성과 유동성은 2024년 대선의 불확실성을 더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편, 라티노의 경제적 성장은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라티노 커뮤니티의 강한 근로 윤리, 높은 노동 참여율, 그리고 교육에 대한 투자가 결실을 맺은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2세대, 3세대 라티노들은 부모 세대보다 높은 교육을 받고 있으며, 전문직 진출 비율이 높아지면서 소득 수준도 크게 향상하고 있다.
다만, 라티노 경제의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라티노의 17%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으며, 이는 미국 전체 빈곤율 12.5%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한, 임금 격차 문제도 여전히 존재한다. 라티노는 비히스패닉 백인 남성이 버는 1달러당 평균 58센트를 버는 데 그치고 있다.
라티노 경제의 급성장은 미국 경제와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 그치지 않고 정치, 문화, 사회 전반에 변화를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회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라티노의 잠재력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향후 미국의 경쟁력을 좌우할 중요한 요인이 될 전망이다. 동시에 라티노 커뮤니티 내부의 경제적 격차 해소와 지속적 교육 투자 등이 이뤄져야 놀라운 성장이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