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춘에 따르면 호주와 싱가포르는 오는 5월 3일, 필리핀은 5월 12일, 한국은 6월 3일 각각 주요 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이들 모두가 미국발 관세 압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호주는 현재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과 보수 성향의 피터 더튼 야당 대표 간 총선 대결을 앞두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는 앨버니지 총리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 로위연구소의 라이언 닐람 여론·외교 담당 국장은 “호주에서 외교정책은 보통 주요 이슈가 아니지만 이번 선거는 다르다”며 “트럼프가 만든 보호무역 기조의 여파가 유권자 정서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지난 2일 이른바 ‘해방의 날’에 호주산 수출품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주의 관세’ 정책에 따른 최저 수준의 관세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큰 호주로서는 중국 경제의 둔화 가능성이 더 큰 부담이다. 앨버니지 총리는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미국의 관세를 공개 비판해왔으며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는 면제 혜택을 받았던 호주가 이번에는 이를 피하지 못했다는 점이 정치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튼은 한때 트럼프와의 친밀함을 내세웠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다. 그는 미국 방문을 취임 후 첫 순방지로 삼겠다고 밝혔으나 보수 진영 전체가 트럼프의 불인기와 함께 지지율이 하락하는 양상이다. 호주국립대 대런 림 정치학 강사는 “호주의 보수 세력은 그간 안보를 강조해왔지만 지금은 최대 위협이 트럼프이기에 그 프레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총선을 치르는 싱가포르 역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주요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리셴룽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집권인민행동당(PAP) 대표로 선출된 로렌스 웡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첫 평가를 받는다. 공공정책 컨설팅업체 퓨처무브스그룹의 데바다스 크리슈나다스 대표는 “웡 총리는 이번 총선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향후 복지 확대와 통상정책 변화에 힘을 싣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싱가포르는 지난 2일부터 미국행 수출품에 10%의 관세가 적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약품 등 특정 품목에 대해 추가 관세 부과를 경고했으며 싱가포르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 협상을 시도 중이라고 스트레이츠타임스가 지난달 27일 보도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는 기본 관세율 자체는 협상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필리핀의 중간선거는 오는 12일 열리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전국 단위 선거다. 미국은 필리핀산 수입품에 대해 17%의 관세를 예고했지만 이는 동남아시아 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필리핀은 이를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선거에서는 관세보다는 부패, 일자리, 식량안보 등 국내 이슈가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오는 6월 3일 대통령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불법적인 비상계엄 시도 등으로 지난해 12월 국회 의결로 탄핵됐고 지난달 헌법재판소가 이를 인용하면서 조기 대선이 확정됐다. 현재까지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유력한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으며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국민의힘은 오는 3일 대선 후보를 확정할 예정이다.
한국은 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에 대해 이미 25%의 고율 관세를 적용받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더해 ‘상호주의 관세’로 한국산 전반에 대해 추가 관세를 예고했다. 현재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미국과의 협상 전면에 나서고 있으며 일부 언론은 그가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기본 10% 관세나 자동차 관세는 협상 대상조차 되지 않는 분위기”라며 “한국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내 투자, 방산 구매, 기술접근권 확대, 대중국 외교 노선 조정 등을 패키지로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킹스칼리지런던의 라몬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미국은 한국에 대해 중국 문제에 있어 더 명확히 입장을 정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과의 거리 두기 조건으로 관세 면제를 얻는 방식은 한국 입장에선 최악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