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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호랑이 곶감과 무디스 신용등급 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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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호랑이 곶감과 무디스 신용등급 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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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
호랑이 한 마리가 마을로 들어왔다. 주린 배를 채우려고 사람이라도 잡아먹겠다는 심산이었다. 외양간에 숨어있다가 우는 아이를 달래는 어머니의 소리를 엿들었다. 어머니가 “호랑이가 왔다. 울지 마라.”라고 하는데도 아이는 계속 울어 댔다. 호랑이도 무서워하지 않고 마구 울어 대던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다. 이유는 곶감이었다. 어머니가 곶감 이야기를 꺼내자 아이 울음소리가 멎은 것이다. 호랑이는 곶감이라는 놈이 자기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때 소도둑이 소를 훔치러 왔다가 호랑이를 소로 착각하고 등에 올라탔다. 호랑이는 자신의 등 위에 탄 놈이 ‘곶감’이라고 착각하고 죽을힘을 다해 달아났다. 도둑은 곧바로 자신이 호랑이 등 위에 탄 줄을 알아채고 떨어지면 잡아먹힐까 봐 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날이 밝자 소도둑은 호랑이 등에서 뛰어내려 고목 속으로 숨었다. 호랑이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도망갔다. 호랑이를 만난 곰이 곶감은 사람일 뿐이라며 잡으러 가자고 호랑이를 부추겼다. 그 와중에 소도둑이 자신을 괴롭히는 곰의 불알을 잡아당겨 곰이 죽었다. 호랑이는 다시 도망갔다. 이후 호랑이는 곶감 소리만 나오면 놀라서 경기를 했다.

오래전부터 구전돼온 설화다. 한때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유럽에도 이와 비슷한 도둑과 호랑이의 설화가 전해온다. 4세기께 만들어진 인도의 '판차탄트라'에도 유사한 곶감 이야기가 나온다. 요즈음 아기들은 곶감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영화와 소설 이야기를 많이 들은 탓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살아가는 아기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무디스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한마디에 전 세계가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자란 신세대 아기들에게는 무디스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일 수 있다.

1997년 한국이 국가 부도 상태에 빠져 IMF 외환위기에 빠졌을 때도 그 시작은 IMF였다. IMF가 신용등급을 떨어뜨리면서 한국은 구조조정과 실업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때 잘린 많은 한국 사람들은 지금도 무디스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떤다. 무디스 트라우마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IMF 세대는 무디스를 저승사자의 신호로 보고 있다.
그 무디스가 또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이다.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최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강등했다. 무디스는 등급 변경 보고서에서 "지난 10여 년간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지속적인 재정 적자로 인해 급격히 증가해왔다"면서 "이 기간 연방 재정 지출이 증가한 반면 감세 정책으로 재정 수입은 감소했다"고 하향 배경을 설명했다. 무디스는 "재정 적자와 부채가 증가하고 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 지급도 현저히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무디스는 이자 비용을 포함한 의무적 지출이 총 재정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4년 약 73%에서 2035년 약 78%로 상승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과세와 지출에 대한 조정이 없다면 예산의 유연성이 제한적인 상태에 머물 것"이라고 우려했다.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뉴욕증시에는 비상이 걸렸다. 뉴욕증시뿐 아니라 달러환율·국채금리·국제유가·금값 그리고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솔라나·카르다노 등 가상 암호화폐도 요동치고 있다. 무디스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내린 핵심적인 이유는 국가 부채와 재정 적자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 부채는 36조2200억 달러 내외다. 우리돈으로 5경744조원에 이른다. 이 금액은 미국이라는 국가가 설립된 이래 연방정부에 누적된 적자를 메꾼 부채의 원금과 이자의 총액이다. 미국 정부는 2001년 이후 매년 재정 적자를 기록했으며, 2016년부터는 사회보장제도, 의료 서비스, 이자 지급에 들어가는 돈이 수입보다 빠르게 증가했다. 특히 2019∼2021 회계연도에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지출을 50%나 늘렸다. 2024년 재정 적자는 1조8300억 달러였다.

미국의 재정 적자는 앞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감세를 공약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감세로 줄어드는 수입을 관세로 충당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미국 하원의 공화당 의원들이 감세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최근 발의한 세제 법안이 통과되면 향후 10년간 3조8000억 달러 상당의 감세가 이뤄지면서 국가 부채가 2조5000억 달러 이상 증가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미국 정부라고 해서 돈을 마음대로 빌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미국 의회는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담보하는 차원에서 정부가 빌릴 수 있는 금액에 상한을 두는 '부채 한도(debt ceiling)'를 설정해 놓고 있다. 그 한도를 채우면 돈을 더 빌리는 방식으로 기존 채무를 갚을 수 없다. 정부가 채무 불이행 상태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의 부채 한도는 36조1000억 달러다. 재무부가 부채 한도를 채우는 시점을 늦추기 위해 특별 조치를 실시하면서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지난 9일 의회 지도부에 의회가 부채 한도를 상향하거나 유예하지 않으면 이르면 오는 8월부터는 특별 조치마저 소진되면서 정부가 채무 불이행 상태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백악관은 의회가 부채 한도를 4조 달러 이상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원에서 공화당이 발의한 법안에는 부채 한도 4조 달러 상향이 포함됐다. 앞으로 부채 한도 상향 문제를 두고 공화당 내부에서 그리고 공화당과 민주당 간에 치열한 신경전이 예상된다.

부채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이자도 엄청나다. 재무부는 2025년 4월 기준으로 미국의 부채를 유지하는 데만 6840억 달러가 들어간다고 밝히고 있다. 2025회계연도 정부 지출의 16%가 이자 상환에 쓰인다. 미국 정부는 평균 3.32% 금리로 돈을 빌려 쓰고 있다. 미국 정부가 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하는 국채의 금리가 올라가면 정부의 이자 부담도 증가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미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013년 100%를 넘었으며 2024년 123%를 찍었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은 달러 기축통화라는 미국의 특권이 아무 대가 없이 부여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 발권국이라는 특권을 바탕으로 그토록 엄청나게 높은 재정 적자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제는 그 도가 지나쳐 미국 경제를 뿌리째 흔들 수도 있는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 무디스가 미국의 최고 신용등급을 박탈함에 따라 큰손들이 미국 국채를 매각하고 떠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은 미국의 방만한 재정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재정 적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만큼 부족액을 채우기 위한 미국의 국채 발행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정책은 특히 미국 국채 전망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곶감보다 더 무서운 무디스의 경고를 계속 무시한다면 제아무리 미국이라 할지라도 제국의 종말을 맞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가 미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대의 변수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