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현지시각)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에 따르면 도이체방크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미국의 재정 상황을 ‘서서히 죽어가는’ 형국에 비유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이는 지난주 무디스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최고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강등한 데 따른 것이다.
도이체방크의 짐 리드 전략가는 “이제 우리는 ‘천 개의 상처 중 몇 번째’쯤에 와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초기 단계는 아니다”며 “이번 등급 강등은 즉각적인 충격은 없을지 몰라도, 재정 건전성의 댐을 조금씩 잠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현재 36조2000억 달러(약 4경9300조원)를 넘어서며 경제학자들과 신용평가기관들의 경고를 불러오고 있다. 특히 이같은 부채를 감당하기 위한 이자 지출도 급증하고 있어, 경제 성장률이 이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디스는 신용등급을 내리며 “미국의 경제적·재정적 강점은 여전히 크지만 이제는 재정지표의 악화 속도를 완전히 상쇄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무디스의 발표를 시장이 과도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반박했지만 시장에서는 미국 재정 운용 능력에 대한 불신이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부 역시 국가부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채 해소 재원으로 자신의 ‘골드카드 비자’ 프로그램 수익을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정부효율부는 비용 절감과 예산 절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비용 절감과 세금 인하를 동시에 추진하는 가운데 정부 재정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트럼프 정부는 의회에 2017년 세금 감면 조치를 연장하고 팁 및 초과근무 수당에 대한 세금을 면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크고 아름다운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백악관은 이같은 세금 감면이 단기적으로 실질 국내총생산(GDP)를 3.3~~3.8%, 장기적으로는 2.6~~3.2%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며 부채 대비 GDP 비율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 의회예산처(CBO)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세금 감면 조치를 연장하고 다른 재정정책 변화가 없다면 공공부채는 2025년 GDP 대비 220%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기존 장기 전망치보다 63%포인트 높은 수치다.
한편, UBS 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 마크 해펠레는 “이번 신용등급 강등은 시장에 단기적인 뉴스 이슈일 뿐, 금융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며 “채권금리 급등 등 시장의 혼란이 확대될 경우 미 연방준비제도가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미국의 채권 시장은 무디스의 등급 하향 조정에 비교적 냉정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미국 재정 운용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확산될 경우 연준이 양적완화를 재개해 장기 금리를 낮추는 방안도 거론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