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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헝가리, 배터리 허브 야심...환경 저항·수요 부진에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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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헝가리, 배터리 허브 야심...환경 저항·수요 부진에 '경고등'

CATL·삼성·SK에 조 단위 투자 유치...정부, 파격적 인센티브로 총력 지원
공장 주변 유해물질 우려 확산...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에 생산량 급감 '이중고'
헝가리 미케페르치 외곽에 건설 중인 CATL 배터리 공장. 사진=클라이밋 체인지 뉴스이미지 확대보기
헝가리 미케페르치 외곽에 건설 중인 CATL 배터리 공장. 사진=클라이밋 체인지 뉴스
유럽 전기차 배터리 허브를 꿈꾸는 헝가리의 대규모 투자 전략이 난관에 직면했다고 클라이밋 체인지 뉴스가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세계 1위 배터리 업체 중국 CATL과 삼성SDI, SK온 등 한국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지역사회의 환경오염 우려와 유럽 전역의 전기차 수요 둔화가 겹치며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계획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오르반 정부는 헝가리를 유럽 배터리 생산의 핵심 기지로 만들기 위해 규제 완화와 파격적 금융 인센티브를 앞세워 글로벌 기업 유치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이는 GDP의 25%를 차지하고 15만여 명을 고용하는 자동차 산업을 내연기관 중심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려는 국가 전략과 맞물린다.

중국 CATL은 데브레첸에 73억 유로(약 11조 8000억 원)를 투자해 연간 100GWh 생산 규모의 공장을 건설 중이다. 2027년 완공 시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배터리 생산기지가 될 전망이다. 삼성SDI와 SK온도 각각 30~47GWh 규모의 생산시설을 가동하고 있으며, BYD는 헝가리 남부 세게드에 연 20만 대 생산능력을 갖춘 전기차 공장을 2025년 가동 목표로 건설하고 있다.

◇ 'NMP 유출' 우려…환경 반발 확산
가장 큰 걸림돌은 환경오염에 대한 지역사회의 강한 반발이다. 데브레첸 외곽 220헥타르 부지에 들어서는 CATL 공장이 대표적 사례다. 인근에서 유기농 농장을 운영하는 주민 유디트 세만은 "평생 살 계획이었던 집과 땅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며 환경 허가 취소 소송에 나섰다.

주민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배터리 생산에 쓰이는 용매 'N-메틸피롤리돈(NMP)' 유출 가능성이다. NMP는 태아 발달에 영향을 주고 유산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물질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우려 배경에는 2010년 이후 환경수자원부를 폐지하고 관련 권한을 농업부로 이관하며 환경 감시 기능이 약화된 정책 흐름이 있다.

◇ 수요 둔화 직격탄…생산 축소·가동 중단

유럽 전기차 시장의 수요 둔화도 헝가리 배터리 산업에 타격을 주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말 헝가리 배터리 생산량은 전년 대비 30% 이상 감소했다. 삼성SDI 괴드 공장의 가동률은 30~40% 수준으로 떨어졌고, SK온 공장은 생산량이 약 35% 줄어 일부 가동을 중단하고 인력을 감축했다. CATL도 공장 2단계 건설을 일시 중단했으며, BYD는 신공장 양산 시점을 2026년으로 연기했다.

기업들은 환경 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해명한다. CATL은 "환경 규제를 완전히 준수하며 공기와 생태계 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고, NMP 배출량을 크게 줄였다고 설명했다. 삼성SDI도 법 기준보다 엄격한 자체 기준을 적용하고 NMP 사용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제조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헝가리 정부와 기업들은 투자 확대와 환경 보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정부는 환경 정보 공개와 지역 오염 감시 강화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헝가리 그린피스의 시몬 게르겔리 활동가는 "독립적 환경 당국이 없으면 실질적 통제가 어렵고, 이는 사회 전반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헝가리 배터리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향후 기술 혁신과 정책 투명성에 달려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