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 등 수백만 달러 장비 가격 급등 예고
전 세계 12개국 부품으로 제작되는 첨단 스캐너, 관세 면제 요청에도 타격 불가피
전 세계 12개국 부품으로 제작되는 첨단 스캐너, 관세 면제 요청에도 타격 불가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관세 정책을 강화하면서 의료기기 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달 유럽연합(EU) 수입품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가운데, 전 세계 부품으로 제작되는 고급 의료기기 가격 급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7일(현지시각) 독일 지멘스 헬시니어스(Siemens Healthineers)의 최첨단 컴퓨터단층촬영(CT) 스캐너 사례를 통해 관세 정책이 의료기기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집중 조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초 EU를 겨냥해 20% 관세를 예고하며 90일간 유예 조치를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유럽과의 무역협상이 "아무런 진전이 없다"며 당초 6월 1일부터 EU 수입품 전체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이후 EU의 요청을 받아들여 50% 관세 부과 시점을 7월 9일까지로 연기했다. 현재 의료 장비를 포함한 대부분의 유럽 수입품에는 10%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 네오톰 알파, 40% 미국 수출하는 혁신 의료기기
지멘스 헬시니어스 CT 제품 마케팅 책임자 헤수스 페르난데스는 "이미지 품질은 비교할 수 없다"며 "1970년대 텔레비전과 고화질TV의 차이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스캐너의 40%는 미국 시장으로 수출되며, 메이요 클리닉, 뉴욕대학교, 듀크대학교 등 주요 의료기관에서 구매했다.
문제는 이런 첨단 의료기기가 전 세계 12개 공급업체의 부품으로 제작된다는 점이다. 일부 스캐너는 수백만 달러에 이르러 병원에서 도입하면 보도자료를 낼 정도로 최첨단 장비다. CT 스캐너 가격은 보급형 50만 달러(약 7억원)에서 최고급형 300만 달러(약 42억원) 이상까지 다양하다.
지멘스 헬시니어스는 이달 초 "관세와 지정학 환경의 변동성이 크게 늘어나 올해 우리 사업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고재무책임자(CFO) 요헨 슈미츠는 분석가들과의 통화에서 "가장 큰 타격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지멘스 헬시니어스 매출의 4분의 1 이상이 미국에서 나왔다.
◇ 의료기기 업계, 관세 면제 간청에도 타격 불가피
의료기술 산업은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에 자사 제품 사용 면제를 간청했다. 미국 의료기기 로비협회 어드바메드(AdvaMed) 최고경영자(CEO) 스콧 휘태커는 "트럼프의 광범위한 관세 위협이 소비세로 작용할 것"이라며 "혁신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일자리를 잃게 하며 의료 시스템 전반 비용을 늘릴 것"이라고 성명서에서 밝혔다.
휘태커는 "역사상 의미 있는 인도주의 임무를 가진 산업은 광범위한 관세에서 면제됐으며, 모든 주요 무역 파트너로부터 의료 기술에 낮은 관세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관세는 외국 제조업체뿐 아니라 미국 기업에도 타격을 준다. GE 헬스케어는 지난 4월 주주 연례보고서에서 중국산 제품 관세와 함께 캐나다, 멕시코 등에서 생산된 제품에 앞으로 부과될 관세가 "추가 비용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존슨앤존슨과 애보트 랩러토리스는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올해 관세 때문에 수억 달러 비용이 생길 것으로 추정했다. 존슨앤존슨 CEO 호아킨 두아토는 "미국 내 더 많은 제조업을 늘리는 것이 목표라면 가장 효과적인 해답은 관세가 아니라 세금 정책"이라고 말했다.
CT 스캐너 시장에서는 미국의 GE, 네덜란드의 필립스, 일본의 캐논, 독일의 지멘스를 포함한 상위 제조업체들 사이의 경쟁이 이미 치열하다.
◇ 병원 운영비 상승, 환자에게 전가될 가능성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최근 병원 최고재무책임자 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6%는 관세 때문에 올해 시설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42%는 내년에 공급 계약이 새로 맺어질 때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응답자의 91%는 의료 장비 및 기기 비용이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병원협회 품질 및 안전 정책 담당 부회장 아킨 데메힌은 "관세가 의료 장비 공급에 차질을 빚고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해외에서 들여오는 부품에 관세가 부과되면 장비 구입과 유지보수 비용에 모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메드테크 유럽 산업 정책 국장 헤수스 루에다 로드리게스는 복잡한 공급망을 설명하며 "부품들이 미국, 중국, 유럽을 통해 도착한다"며 "우리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관세의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기기가 보건 안전 당국에 의해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어 "그냥 짐을 싸서 이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독일 포르크하임 현장에서 광자 계수 CT 조립을 감독하는 팀 리더 루카스 크라츠는 "우리가 작업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장치가 아니라 많은 선택사항을 가진 많은 변형"이라며 "아무에게나 이것을 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독일 바이에른 지역 의료기기 제조업체들은 무역 장벽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들이라고 지적한다. 데이비드 엥겔슈테터 포르크하임 공장 CT 생산 책임자는 "우리 모두에게는 가족과 친구, 아픈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며 "만약 내가 미국에 있으면서 관세 때문에 이런 첨단 검사를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라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