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이후 급락하던 미국 달러화가 최근 들어 다소 안정을 되찾고 있지만, 외환 옵션 시장에서는 달러화 추가 하락에 대한 베팅이 여전히 강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속적인 관세 전쟁 여파로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와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으로서의 달러화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3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은 외환시장 참가자들이 미국의 경기 둔화 가능성과 무역 정책 불확실성에 주목하면서 달러화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통신은 특히 외환 옵션 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투자심리가 최근 수년 만에 최저치 근방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달러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예상보다 더 광범위하고 높은 수준의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한 이후, 강세 기대가 급속히 꺾이며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후 일부 상호 관세가 일시적으로 유예되면서 시장이 잠시 안정을 찾았지만, 외환 옵션 시장에서는 여전히 달러화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옵티버(Optiver)의 외환 옵션 부문 책임자 팀 브룩스는 "전반적인 외환 옵션 가격은 달러화 추가 약세 위험이 커졌음을 가리킨다"면서 "지난 5~10년을 기준으로 볼 때 투자자들의 달러화 풋옵션(달러 약세에 베팅) 수요가 전례 없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달러화 풋옵션 수요가 달러화 콜옵션(달러 강세에 베팅) 대비 이례적으로 강하다"고 덧붙였다.
풋옵션은 특정 기초 자산을 정해진 가격과 시점에 팔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며, 일반적으로 자산 가격 하락에 베팅할 때 활용된다. 이에 반해 콜옵션은 해당 자산을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며, 자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
LSEG에 따르면 특히 3개월과 6개월 및 1년 만기 유로/달러 외환 옵션의 리스크리버설(R/R) 지표는 2007년 이후 달러화에 대한 유로화 강세 심리가 최고치 근방을 유지하고 있다.
외환 리스크 리버설은 풋옵션과 콜옵션을 동시에 매매하는 옵션 전략으로, 특정 통화에 대한 시장의 수요와 심리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지표다.
코페이(Corpay)의 칼 샤모타 수석 시장 전략가는 "달러에 대한 포지셔닝은 여전히 극도로 약하다"면서 "특히 1년물 리스크 리버설이 단기물보다 훨씬 높게 거래되는 점은 옵션 시장 참여자들이 유로화가 점진적으로 더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노무라의 사가르 삼브라니 선임 외환옵션 트레이더는 "달러가 엔화에 대해서도 하락할 것이라는 베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CME 그룹의 옵션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달러 풋옵션 수요는 대부분의 주요 통화에 대해 증가하고 있다. CME 그룹의 외환 옵션 부문 책임자인 크리스 포비는 "5월 기준, 전체 외환 옵션 거래량 중 달러 풋옵션이 약 59%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특히 엔화와 호주 달러에 대한 달러 풋옵션 수요가 더욱 두드러졌다. 포비는 엔화와 호주 달러에 대한 외환 옵션 거래량 중 65% 이상이 달러 풋옵션이었다고 설명했다.
연초 이후 달러화는 유로화와 엔화 대비 각각 약 9% 하락했다. 유로화는 현재 달러당 1.1378달러, 달러는 엔화에 대해서는 143.50엔에 거래되고 있다.
코페이의 샤모타는 "향후 1년 동안 미국 이외의 구조적으로 저평가된 시장으로 자금이 재배분되면서 점진적인 투자 다각화가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의 한 대형 은행 외환 옵션 트레이더는 "기관·헤지펀드 등 다양한 고객들로부터 달러 풋옵션 매수 수요가 상당하다"면서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보면, 달러 약세에 베팅하는 것이 가장 논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