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법원의 '글로벌 FRAND' 조건 설정 권한이 핵심 쟁점
판결 따라 국제 특허 소송 전략 지형에 큰 변화 예상
판결 따라 국제 특허 소송 전략 지형에 큰 변화 예상

지난 6일(현지시각) 법률 전문 매체 아이엠-미디어 등 외신에 따르면 두 회사의 법적 분쟁은 2024년 말 기존 사용권 계약이 만료된 뒤 연장에 실패하면서 시작됐다. 삼성전자가 영국 고등법원에 ZTE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분쟁의 핵심에는 5G, LTE 같은 국제 표준 기술에 반드시 써야 하는 '표준필수특허(SEP)'가 있다. 표준필수특허 보유자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FRAND)' 원칙에 따라 사용자에게 특허를 제공해야 한다.
최근 영국 법원은 '언와이어드 플래닛 대 화웨이' 사건 등에서 자국 법원이 세계적인 FRAND 사용권 조건을 정할 수 있다고 판결하며 국제 특허 분쟁의 주요 무대로 떠올랐다. 삼성전자는 이 판결을 근거로 영국 법원이 ZTE의 세계 표준필수특허 보유 목록에 대한 FRAND 사용권 요율을 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맞서 ZTE 역시 중국 충칭 법원에 따로 소송을 내며 반격에 나섰다. 최근 영국 법원 심리 과정에서는, 삼성전자가 중국 법원에 낸 관할권 이의 신청이 기각됐다는 사실까지 확인됐다.
◇ '임시 사용권' 관할 두고 양측 팽팽한 대립
현재 영국 법원에서 진행 중인 심리의 최대 쟁점은 본안 판결에 앞서 법원이 잠정적으로 사용권 조건을 정하는 '임시 사용권'의 관할권 문제다. 임시 사용권은 소송 중인 기업의 사업 연속성을 보장하고 특허권자의 권리를 지키는 중요한 제도다. 영국 법원이 이를 세계 기준으로 선언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삼성전자 측 대리인인 대니얼 알렉산더 왕실 선임 변호사(KC)는 "영국 법원이 이 사건에 대한 명백한 관할권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며 "ZTE가 중국 법원에서 임시 사용권 설정을 추진하는 것은 기존 소송의 '무결성'을 해치는 '명백히 불합리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ZTE가 신의성실의 원칙을 어기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반면 ZTE 측 대리인은 "선호하는 관할권에서 소송을 진행하려는 행위 자체를 '악의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만약 처지가 바뀌어 삼성전자가 같은 주장을 펼쳤다면, 영국 법원 역시 이를 '이례적인' 비난으로 여겼을 것"이라며 "중국 법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가정할 때, 한쪽 당사자에게만 '악의'가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사건을 심리하는 제임스 멜러 판사는 임시 사용권 문제를 처음 다루기 시작한 곳이 영국 법원이라는 점을 짚었으나, ZTE 측은 소송을 먼저 냈다는 순서가 관할권을 정하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 '관할권 제국주의' 비판 속 국제 소송 지형 바뀔까
영국 법원의 적극적인 관할권 행사를 두고 '관할권 제국주의'라는 비판도 나온다. 자국과 무관한 해외 특허권에까지 영향을 미치려는 태도가 미국, 중국, 독일 같은 다른 주요국과의 법적 긴장을 키우는 탓이다.
이번 청문회 결과는 앞으로 세계 기업들의 소송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기업들은 유리한 판결을 얻으려고 영국으로 소송을 집중하는 '재판지 쇼핑' 전략을 강화할 수 있으며, 표준필수특허 보유자는 협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반대로 피고 기업은 여러 나라에서 중복 소송에 휘말릴 위험 또한 커진다.
한편 영국 고등법원의 결정은 세계 특허 분쟁에서 영국 법원의 사법적 영향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중요한 판례가 될 전망이다. 법원의 판단이 세계 기업들의 특허 위험 관리와 사용권 전략에 중대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어, 세계 특허업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