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영국, 동맹 신뢰에 불안 커져

미국 국방부는 엘브리지 콜비 정책실장이 이끄는 검토를 통해 오커스 협정을 계속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콜비 실장은 이전에 오커스에 회의적인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대만 분쟁 등 위기 상황에서 미국이 핵추진 공격 잠수함(SSN)을 줄이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 3월 상원 청문회에서 그는 "호주가 SSN을 갖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앞으로 몇 년간 충돌 위험이 매우 현실적이고, 미국의 SSN은 대만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커스는 미국, 영국, 호주가 중국의 군사력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체결한 세 나라 안보 협력체이다. 핵추진 잠수함 공유(필라 1)와 첨단 군사기술 개발(필라 2)로 나뉜다. 미국은 2032년부터 호주에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을 최대 5척까지 팔기로 약속했다. 영국과 호주는 2040년대 초 SSN-오커스로 불리는 공동 개발 잠수함을 만들 예정이다. 미국이 오커스에서 빠지면 이 약속은 거의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 호주와 영국, 동맹 신뢰에 불안 확대
이번 검토는 호주와 영국 정부에 큰 불안을 안겼다. 오커스는 미국, 영국, 호주가 수십 년 만에 가장 실질적인 군사 및 전략 협력 사업으로 꼽힌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오커스를 설계한 커트 캠벨 국무부 차관보는 "조정, 국방비 지출, 공동의 목표를 키우려는 노력은 환영받아야 한다. 오커스를 약화시키려는 관료주의적 시도는 가장 가까운 안보 및 정치 파트너들 사이의 신뢰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최고위원 진 샤힌은 "이 파트너십을 파기하는 것은 미국의 명성을 더 떨어뜨리고, 동맹국들 사이에서 신뢰성에 의문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와 영국 정부는 이번 검토가 트럼프 행정부의 일부 입장에 대한 불안감을 키운다는 점을 인정했다. 영국 정부 관계자는 "검토에 대해 알고 있다"며, "노동당 정부도 오커스에 대한 검토를 실시했고, 영국-미국 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고 밝혔다. 워싱턴 주재 호주 대사관은 논평을 거부했다.
◇ 미국, 호주에 국방비 증액 요구...동맹 간 긴장 심화
미국은 오커스와 함께 호주에 국방비 증액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최근 싱가포르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장관과 만나, 호주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기준 2%에서 3.5%로 늘릴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말스 장관은 "이미 평시 기준으로 호주 역대 최대 규모의 방위비 증액을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우리가 국방 정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주는 앞으로 4년간 방위 예산을 106억 호주달러(약 9조 4400억 원) 늘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인 국방비를 2034년까지 GDP의 2.4%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호주는 미국 잠수함 산업 지원을 위해 5억 달러를 우선 납입한 상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3.5%에는 미치지 못한다. 미국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에게도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는 등 동맹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허드슨 연구소의 호주 국방 전문가 존 리는 "미국이 지난 10년간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에 집중해왔기 때문에 호주에 대한 압력이 커지고 있다"며, "호주 해군이 국방비를 GDP의 3%로 늘리지 않는다면 급격히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호주가 이 추세를 계속 유지한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오커스의 핵잠수함 공유(필라 1)를 동결하거나 취소해 호주가 군사 자금을 더 늘리도록 강제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 싱크탱크 CSIS의 호주 전문가 찰스 에델은 "호주의 국방비 지출은 점차 늘고 있지만,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만큼 빠르지도 않고, 오커스와 기존 재래식 전력에 드는 비용을 모두 감당할 만큼 충분히 빠르지도 않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검토는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안보 체제를 '미국 우선주의'에 맞춰 다시 점검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고 FT는 전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이전 행정부의 이 이니셔티브가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의제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커스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헤그세스 장관은 "국방부가 무엇보다도 먼저 인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검토가 30일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으나, 국방부는 공식 시한을 밝히지 않았다. 검토 결과와 관련해 오커스 협정에 대한 미국의 입장 변화가 있을 경우, 공식 채널을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움직임은 미국의 동맹국들 사이에 신뢰성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오커스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호주와 영국이 오커스 검토에 대해 믿을 수 없을 만큼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오커스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위한 핵심 동맹 협력으로 꼽힌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