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심층분석] BYD發 '대금 60일 지급' 선언…中 자동차 '상생의 시대' 열리나

글로벌이코노믹

[심층분석] BYD發 '대금 60일 지급' 선언…中 자동차 '상생의 시대' 열리나

평균 182일 '어음 결제' 관행에 철퇴…中 정부, 대금지급 의무화
'가격전쟁' 대신 '공급망 혁신' 경쟁… “유럽 시장 공략 속도 낼 것”
중국 전기차 1위 기업 BYD가 공급업체 대금 지급 기한을 60일로 단축하겠다고 선언하며 중국 자동차 업계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정부의 지급 의무화 조치에 따라 출혈 경쟁이던 가격전쟁이 끝나고 공급망 혁신 경쟁이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사진은 BYD에 공급되는 전기차 부품. 사진=팬 데일리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전기차 1위 기업 BYD가 공급업체 대금 지급 기한을 60일로 단축하겠다고 선언하며 중국 자동차 업계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정부의 지급 의무화 조치에 따라 출혈 경쟁이던 가격전쟁이 끝나고 공급망 혁신 경쟁이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사진은 BYD에 공급되는 전기차 부품. 사진=팬 데일리
중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시장의 과도한 가격 경쟁 속에서, 전기차 1위 기업 비야디(BYD)를 필두로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공급업체에 납품 후 60일 안에 대금을 지급하겠다고 선언하며 업계의 지각 변동을 예고했다고 팬데일리가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장기간 이어진 대금 미지급이 산업 생태계 전반의 혁신과 안정을 위협하자 나온 자구책이자 새로운 표준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자동차 산업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받아 온 불공정 관행을 씻어내고 공급망 전반의 체질을 개선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6월 초, BYD, 지리, 창청, 상하이자동차 등 기존 강자는 물론 샤오펑, 니오 같은 신생 전기차 업체까지 총 17개에 이르는 중국 자동차 기업들은 공급업체 대금 지급 기한을 60일 안으로 단축하는 계획을 일제히 발표했다. 업체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고 공급망의 고품질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고 입을 모았다.

◇ 칼 빼 든 정부…'고질병' 수술 나선 中 자동차 업계

이러한 집단행동의 배경에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 6월 1일부터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지급하는 대금을 원칙적으로 60일 안에 치르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을 시행했다. 특히 이 규정은 지급 지연을 유발했던 어음 등 비현금성 결제 수단 사용을 금지해 실질적인 현금 흐름 개선을 꾀하는 것이다.
앞서 중국철강공업협회는 "일부 자동차 회사가 수개월간 대금을 미루면서 10%가 넘는 가격 인하까지 요구해 공급업체들이 막대한 유동성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지난 5월 31일, "불합리한 가격 인하로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려는 기업을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정부가 더는 과당 경쟁과 공급업체에 짐을 떠넘기는 관행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 선봉에 선 BYD "업계 헝다? 재무는 건전"

이번 변화의 선봉에는 업계 1위인 BYD가 섰다. BYD는 11일 새벽 가장 먼저 성명을 내고 60일 지급 규정 준수를 약속했다. 다른 회사 고위 임원이 BYD의 빠른 성장과 부채를 겨냥해 "자동차 업계의 헝다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 것에 대한 정면 돌파라는 해석이 나온다.

BYD는 즉각 재무 자료를 공개하며 의혹을 일축했다. 실제로 BYD의 부채 비율(약 70%)과 매입채무 회전일수는 경쟁사인 지리(127일)와 비슷했고, 창청자동차(163일)나 상하이자동차(164일)보다는 낮았다. 2024년 기준 매출 7770억 위안(약 146조 9307억 원), 현금 보유고 1549억 위안(약 29조 2915억 원)에 이르는 재무 건전성을 바탕으로 지급 기한 단축을 감당할 유동성도 충분하다.

BYD의 리 브랜딩 총괄은 "BYD가 헝다와 같다는 주장은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럽다"며 "이런 소문으로 중국 전기차 산업을 훼손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BYD의 선제 조치는 규제 준수를 넘어, 재무 건전성을 과시하고 공급망과의 신뢰를 다져 장기적인 성장을 꾀하려는 전략이라는 평가다.

BYD가 선언한 뒤 제일자동차, 둥펑, 광저우자동차, 지리 등 국영·민간 기업과 샤오미, 리프모터 같은 신생 기업까지 동참하며 60일 지급은 업계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일부 기업은 중소기업뿐 아니라 모든 공급업체에 60일 지급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밝혀, 업계 전반의 지급 관행이 대대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분석가는 "이제 60일 지급은 선택이 아닌, 업계의 새로운 기준선이 됐다"고 평가했다.

◇ "드디어 숨통 트인다"…유동성 가뭄에 '단비'

자금난에 허덕이던 부품 공급업체들에는 이번 조치가 '생명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중국 자동차 업계의 평균 대금 지급 기일은 182일로, 세계 평균(약 90일)의 두 배에 이르렀다. 대금 회수 기간이 기존의 3분의 1 밑으로 줄어든다. 한 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는 "납품 후 60일 안에 현금으로 대금을 받을 수 있다면, 자금흐름이 크게 나아져 생존뿐 아니라 성장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나 파이낸스는 "명확한 60일 지급 기한은 중소 공급업체에 현금 회수의 확실성을 부여해 금융 비용을 낮추고, 생존 걱정 대신 기술 개발과 설비 확장에 투자할 여력을 만들어 공급망 전체의 혁신을 촉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발표 직후 중국 자동차 부품 관련 주가가 급등하며 시장의 기대감을 나타냈다.

◇ '가격 출혈' 멈추고 '신뢰·기술'로 경쟁

이번 조치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 구도까지 바꿀 전망이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의 둥양 전 부회장은 "지급 기간 단축은 자동차 제조업체의 현금 흐름에 영향을 미쳐 무분별한 가격 전쟁을 벌일 능력을 제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급업체에 대금을 미루는 방식으로 자금을 확보해 무리한 가격 경쟁을 이어가던 관행에 제동이 걸리면서, 가격이 아닌 기술, 품질, 브랜드로 승부하는 건전한 경쟁 구도가 마련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 자동차 산업 모델을 뒤따라, 완성차와 부품업체 사이 상생 협력 관계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창안자동차의 주화룽 회장 역시 "비도덕적인 가격 전쟁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으며, 싸이리스의 장싱하이 최고경영자(CEO)는 "저가 경쟁은 품질 기준을 위협하며, 안전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번 60일 지급 약속은 단순한 결제 관행 개선을 넘어, 중국 자동차 산업의 공급망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중국 자동차 산업이 ‘가격 전쟁’의 시대를 지나 ‘공정한 협력과 혁신 경쟁’의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한편, BYD는 안정된 내수 공급망을 발판 삼아 유럽 소형 전기차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내 인기 차종인 ‘씨걸’을 유럽 시장에 ‘돌핀 서프’라는 이름으로 출시, 2만 유로(약 3128만 원) 안팎의 파격적인 가격을 앞세워 현지 가격 경쟁에 불을 붙였다. 이 때문에 폭스바겐, 르노 등 유럽 전통 강자들은 경쟁력 있는 저가 전기차 출시에 어려움을 겪으며 대응에 애쓰고 있다. 실제로 BYD는 지난 4월 유럽 28개국 전기차 판매량에서 테슬라를 제치고 1위에 오르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BYD는 현재 건설 중인 헝가리 공장에 이어 유럽에 두 번째 공장 설립까지 계획하고 있으며, 현지 생산으로 가격 경쟁력을 높여 2030년까지 유럽 시장의 선두 주자로 올라선다는 목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