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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핵무기 지출, 1초에 430만 원꼴…'파멸의 비용' 137조원 역대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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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핵무기 지출, 1초에 430만 원꼴…'파멸의 비용' 137조원 역대 최대

미국, 전체 절반 넘어…우크라이나 전쟁 아닌 '구조적 비용' 탓
민간 기업은 425억 달러 '돈잔치'…핵위협은 냉전 이래 최고 수준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미 공군의 차세대 장거리 스텔스 폭격기 B-21 '레이더'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데일의 노스롭그루먼사 시설에서 첫 시험 비행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미 공군의 차세대 장거리 스텔스 폭격기 B-21 '레이더'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데일의 노스롭그루먼사 시설에서 첫 시험 비행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지난해 세계 핵무기 관련 지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약 136조 7500억 원)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9개 핵보유국이 핵무기고 현대화 등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전년보다 11%나 급증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지난 1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세계 핵무기 총지출액은 2023년보다 약 100억 달러(약 13조 6750억 원) 늘어난 1002억 달러(약 137조 836억 원)에 이른다. 대부분의 자금은 핵무기고 현대화와 일부 확장에 투입됐다.

보고서는 이 자금으로 기후변화 대응, 공공의료, 교육 등 인류의 실제 위기를 해결할 수 있었다며 핵 지출의 막대한 기회비용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핵보유국들이 2024년에 핵무기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쓴 돈으로 국제연합(UN) 예산을 28번이나 지불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나 홀로 절반' 미국, 압도적 1위…중·영 뒤이어
국가별로는 미국이 지출을 주도했다. 미국은 지난해에만 전년보다 53억 달러(약 7조 2509억 원) 증가한 568억 달러(약 77조 7194억 원)를 투입해 전체 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 액수는 다른 8개 핵보유국의 지출 총액을 넘어선 규모다.

중국이 약 125억 달러(약 17조 1175억 원)로 뒤를 이었고, 영국은 22억 달러(약 3조 126억 원) 증가한 104억 달러(약 14조 2386억 원)를 지출했다. 그 외 핵보유국은 프랑스,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이다.

이러한 지출 급증의 원인이 단순히 최근 지정학에 따른 긴장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ICAN의 앨리시아 샌더스-자크레 정책과 연구 조정관은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긴장이 유럽의 국방 전략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지출 급증의 핵심 동력은 장기 군사 계약과 핵 운반 체계 개발에 따른 구조에서 비롯된 비용과 더 가깝다고 분석했다.

특히 민간 부문이 핵무기 개발과 유지의 핵심 동력이다. 2024년 한 해 동안 민간 기업들은 핵무기 관련 계약으로 최소 425억 달러(약 58조 1867억 원)를 벌어들였으며, 현재 총 4630억 달러(약 633조 8007억 원) 규모의 장기 계약을 수주했다.

◇ 민주적 통제는 실종, 핵위험은 최고조

샌더스-자크레 조정관은 제네바 설명회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지출 증가를 보면, 적어도 정치 지도자들의 발언에서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언급을 확실히 보아왔다. 그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주된 동력은 즉각적인 안보 우려가 아닌, 구조의 비용과 기존 프로그램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영국과 여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은 러시아를 유럽의 주요 안보 위협으로 지목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증액을 약속하는 등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다. ICAN은 이러한 지출 과정에서 민주적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특히 미국 핵무기가 배치된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튀르키예 등에서는 관련 정보가 국민과 입법부에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비용이 극히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군비 경쟁은 핵무기 사용 위험성을 냉전 이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분쟁, 인도-파키스탄과 한반도의 긴장이 주된 요인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ICAN 보고서는 점증하는 세계 긴장 속에 현재의 핵무기 지출 수준이 과연 필요한지, 또 지속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각국이 군축과 외교로 정책의 초점을 전환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현재 핵무기금지조약(TPNW)에는 98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나, 정작 9개 핵보유국은 동참하지 않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