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LFP 과잉 생산, 북미·유럽은 수입 의존 심화
공급망 현지화·차별화 전략이 생존 가를 핵심 변수로 부상
공급망 현지화·차별화 전략이 생존 가를 핵심 변수로 부상

◇ 전체는 과잉, 내부는 불균형…세계 시장의 현주소
세계 배터리 시장은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는 구조적인 불균형을 보인다. 맥킨지(McKinsey)가 26일(현지시각)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세계 배터리 수요는 현행 추세를 유지할 때 2025년 약 1970기가와트시(GWh)에서 2030년 3910GWh로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공급사들이 발표한 명목 생산능력은 2025년 4340GWh, 2030년에는 무려 6440GWh에 이른다.
물론 건설 지연이나 초기 수율 문제 등을 고려한 실제 생산량은 이보다 적다. 기업 역량을 반영한 기본 시나리오에서 2030년 실제 공급량은 4750GWh에서 5270GWh 사이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2030년 수요 전망치(3910GWh)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러한 공급 과잉은 전기차 수요 둔화, 신규 업체의 꾸준한 시장 진입, 주요 업체의 증산 등 여러 요인이 겹친 결과다. 수요 증가세가 빨라지는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해도, 2030년 약 440GWh의 공급 과잉이 생길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세계적인 관점에서는 배터리 공급사들이 가격 인하와 생산량 감축 압박에 놓인 어려운 처지로 보인다.
하지만 시장을 지역별로 나누어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일부 국가는 자국 수요를 채우고도 남는 생산능력을 갖춘 반면, 다른 나라들은 심각한 공급 부족 탓에 수입에 기대고 있다.
중국은 LFP 배터리를 중심으로 공급이 크게 넘친다. 2030년 중국 배터리 생산능력의 약 64%가 L(M)FP(리튬·철·인·마그네슘) 계열으로 예상되며, 이는 내수와 수출 물량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이 때문에 현지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일부 기업은 가격을 내리면서 수익성 압박이 커지고 있다. 다만, 세계 리튬 정제 능력의 67%를 차지하는 등 탄탄한 원자재 공급망은 여전히 막강한 경쟁력이다.
북미는 현재 공급 부족에서 2030년 공급 과잉으로 전환하는 분기점에 서 있다. 2025년 약 50GWh의 공급 부족이 예상되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보조금 정책에 힘입어 2030년에는 시장 균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IRA 정책의 불확실성과 L(M)FP 등 새로운 배터리 화학소재의 현지 공급망이 약하다는 점은 여전한 과제로 꼽힌다.
유럽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2025년에 약 70GWh의 공급 부족이 예상되며, 이 부족분은 오롯이 수입으로 채워야 한다. 특히 유럽은 신생 스타트업이 예상 생산량의 30%를 차지해 생산에 차질을 빚을 위험이 다른 지역보다 크다. 유럽연합이 그린딜 산업정책 등으로 산업 육성을 꾀하고 있지만, 여러 기업이 프로젝트를 취소하거나 파산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30년까지 공급 부족이 이어진다면,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배터리와 힘겨운 경쟁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러한 지역별 불균형은 배터리 종류에 따라 더 뚜렷하다. NMC(니켈·망간·코발트),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등 다양한 소재가 경쟁하는 가운데, 중국이 LFP 배터리 시장에서 압도적인 공급 과잉을 보이는 반면, 전통적으로 NCM 배터리에 힘써온 유럽과 북미는 LFP 배터리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모두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다. 2030년에도 이러한 구도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과 일본은 자체 배터리 공급망이 잘 갖춰져 있어 현지 수요를 채울 수 있다. 반면 동남아, 호주, 인도 등은 수입 의존도가 높아 정책적으로 현지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 '각자도생' 시대…가치사슬별 생존 해법은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시장 구도 속에서 기업들은 공급망 단계마다 다른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한다.
소재 등 상류 기업은 유럽과 북미 시장의 '탈중국' 움직임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이들 지역은 LFP 양극활물질의 약 30%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어, 현지 공급망 구축이 시급한 과제다. 현지 셀 제조사 또는 완성차 업체(OEM)와 장기 구매 계약을 맺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하고, IRA 같은 정부 지원책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셀 제조업체는 지역마다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공급 과잉인 중국 기업들은 비용 관리와 가동률 최적화에 힘쓰며 내실을 다져야 한다. 반면 북미와 유럽 기업들은 ▲비용 경쟁력 확보 ▲현지 공장 증설을 통한 시장 점유율 확대 ▲소재의 현지 조달 ▲꾸준한 기술 개발이라는 여러 목표를 동시에 이뤄야 한다. 한국과 일본 기업들은 이미 확보한 공급망 경쟁력을 바탕으로 소재·재활용과 수출 확대를 통해 성장을 이어가야 한다.
완성차 업체 등 수요 기업에는 공급망 안정성 확보가 최우선 과제다. 지정학적 위험을 줄이고 정부 지원책을 받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부품의 현지 조달 비율을 높여야 한다. 특히 유럽과 북미의 에너지저장장치(ESS) 기업들은 부족한 LFP 배터리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현지 공급사와 장기 계약을 맺거나, 비용 경쟁력이 높은 중국의 공급 과잉 물량을 전략적으로 쓰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세계 배터리 시장은 이제 '공급 과잉'이라는 한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방정식이 됐다. 거시 통계 너머의 지역별, 종류별 수요와 공급 흐름을 정확히 읽고, 이에 맞춰 공급망을 최적화하며 효율적인 조달 전략을 빨리 실행하는 기업만이 미래의 승자가 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