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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루코일, 이라크 유전 계약금 2천억 원 놓고 한국 은행에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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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루코일, 이라크 유전 계약금 2천억 원 놓고 한국 은행에 소송

제재 피한 자회사 활용, 영국 법정서 공방
국제 에너지 프로젝트 금융 위험 현실화
러시아 석유 대기업 루코일이 이라크 유전 개발 계약금을 두고 한국계 은행을 상대로 영국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는 국제 에너지 프로젝트 투자에 따른 금융 리스크 현실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러시아 석유 대기업 루코일이 이라크 유전 개발 계약금을 두고 한국계 은행을 상대로 영국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는 국제 에너지 프로젝트 투자에 따른 금융 리스크 현실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사진=로이터
러시아 거대 석유 기업 루코일이 이라크 서쿠르나 2 유전 개발 사업과 관련해 계약금 1억 4230만 달러(약 1960억 원) 지급 보증을 발행한 한국계 은행을 상대로 영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인텔리전스 온라인이 1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외신에 따르면 이번 소송은 시공사의 계약 불이행으로 루코일이 보증금 지급을 요구했으나, 은행 측이 지급 요구서의 형식적 결함을 주장하며 거부한 데 따른 것이다. 소송의 핵심 쟁점은 계약 변경 조건 명시 여부와 보증서 조항 해석이다.

이라크 남동부 서쿠르나 2 유전 개발 사업에 참여한 루코일은 시공사와 계약을 체결했으며, 계약 금액은 1억 4230만 달러(약 1960억 원)에 이른다. 시공사는 계약 이행 보증으로 무조건 지급 보증(on-demand bank guarantee)을 제출해야 했으며, 이 보증은 한국계 은행이 발행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외신은 전했다. 과거 유사 사례에서는 영국은행인 바클레이즈 은행이 보증을 발행한 적이 있다.

시공사가 계약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자, 루코일은 해당 은행에 보증금 지급을 요구하는 서면을 제출했다. 그러나 은행 측은 지급 요구서에 "계약에 대한 변경이 없었으며, 작업의 적시 이행에 영향을 미치는 수정사항이 없다는 점"을 명시하는 조건이 누락돼 형식에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며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루코일은 영국 법정에 소송을 제기했다.
공개된 자료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느 한국계 은행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소송의 주요 쟁점은 보증서 조항 해석이었다. 은행 측은 루코일의 지급 요구가 계약 변경 여부를 명확히 확인하는 문구를 포함하지 않아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영국 법원은 보증서의 4항(계약 변경 없음 명시)과 5항(계약 변경 있어도 은행 책임 면제 안 됨 명시)이 서로 맞서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상업적으로 비합리적인 해석"을 배제하며 루코일의 지급 요구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판사는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는 계약 변경이 자주 발생하는데, 이를 모두 은행에 알려야 한다면 보증서의 실효성이 사라진다"고 짚으며 루코일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과적으로 루코일은 보증금 지급을 받을 권리를 인정받았고, 은행의 지급 거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소송은 루코일이 러시아 제재 대상에서 제외된 자회사를 통해 국제 분쟁을 관리하며 영국 등 제3국 법원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보여준다. 이라크 내 에너지 프로젝트는 현지 규제, 계약 이행, 금융 보증 등 복잡한 법적 분쟁이 자주 발생한다. 한국계 은행들은 해외 대형 프로젝트 금융에서 높은 수익을 기대하지만, 동시에 국제 분쟁, 제재 위험, 계약 불이행 등으로 인한 손실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루코일이 한국계 은행을 상대로 영국 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국제 에너지 프로젝트 금융의 법률적·상업적 복잡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영국 법원은 보증서의 명확한 조건과 상업적 합리성을 중요하게 고려했으며, 은행 측의 지나치게 엄격한 형식적 요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으로 한국계 은행들은 해외 프로젝트 금융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급 거부 위험과 소송 대응 비용을 더욱 신중하게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법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