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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배터리 드림'의 그늘… 공장엔 수조 지원, 주민은 이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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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배터리 드림'의 그늘… 공장엔 수조 지원, 주민은 이중고

삼성SDI· SK온 등서 수천 명 감원... 정부 산업정책 실패론 '들썩'
공장엔 과잉 물 공급, 주민 상수도는 방치… 자원 배분 두고 갈등 심화
헝가리 데브레첸 남부 경제특구에 CATL의 배터리 공장과 에코프로의 양극재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사진=아틀라츠조이미지 확대보기
헝가리 데브레첸 남부 경제특구에 CATL의 배터리 공장과 에코프로의 양극재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사진=아틀라츠조
헝가리 정부가 외국계 배터리 공장에 조 단위의 막대한 공공자금을 투입하는 동안, 헝가리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주민들은 물 부족에 시달리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히르클릭·아틀라츠조 등 헝가리 현지 언론들이 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언론들은 정부의 산업정책이 고용과 생활 기반 시설 양쪽에서 심각한 불균형을 낳으며 사회 갈등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원금은 늘고 일자리는 줄고…정책 실패론 대두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약속과 달리 헝가리 산업 현장에서는 '잠행 감원'이 현실로 나타났다. 2024년 4월부터 1년간 15대 공장에서만 4655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아우디 죄르 공장에서 653명이 줄었고, 삼성SDI 괴드 공장은 18%의 인력을 감축했다. SK온 코마롬·이반차 공장의 직원 수는 34%나 급감했으며, CATL 데브레첸 공장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정부가 800억 포린트(약 3224억 원) 넘는 자금을 투입한 두나페르 제철소에서 하루아침에 1700명이 해고된 사건은 산업정책 실패의 상징으로 꼽힌다.

공업용수는 '과잉', 주민용수는 '방치'…물 배분 갈등 점화


일자리 문제와 더불어 공업용수와 주민용수 공급의 극심한 불균형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정부는 삼성SDI·SK온·CATL 같은 배터리 공장의 안정된 물 공급을 위해 수천억 원의 공공자금을 들여 대규모 기반 시설을 짓고 있다. 삼성SDI 괴드 공장을 위해 하루 2만7000톤의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시설(345억 포린트 규모)을 건설 중이고, SK온 이반차 공장의 용수 공급량은 필요량(1만 톤/일)의 세 배인 3만1000톤까지 늘렸다.
반면 주민들이 사용하는 상수도망은 노후된 탓에 몸살을 앓고 있으며, 예산 부족으로 수도관 파열과 단수 사태가 되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실제 필요량 이상으로 과도하게 설계한 공장 기반 시설과 최소한의 투자만 하는 주민 기반 시설 사이의 불균형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차별적인 지원은 환경오염과 자원배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공업용 취수장이 하수 방류구와 가까워 수질 오염 우려가 나왔으며, 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헝가리 사회는 '누가 먼저 물을 쓸 것인가?'라는 근본 질문에 맞닥뜨렸다. 대형 공장, 지역 주민 그리고 데브레첸의 대형 숲과 호수 같은 자연보호구역 중 물 사용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를 두고 심각한 사회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야당인 헝가리 사회당(MSZP)은 "정부가 국제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일자리와 주민의 삶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실과 동떨어진 산업에 대한 환상이 노동자의 고용 불안과 주민의 생활 위기라는 이중 실패를 낳았다"며 국가 지원을 받는 대기업에 최소 고용을 의무화하고 자원배분을 투명하게 하는 등 정책을 전면 수정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