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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시민권 박탈 확대 추진에 캘리포니아 이민자 사회 ‘불안’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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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시민권 박탈 확대 추진에 캘리포니아 이민자 사회 ‘불안’ 확산

미국 워싱턴DC의 법무부 청사.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워싱턴DC의 법무부 청사.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민권 박탈(귀화 취소)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전역의 귀화 시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법무부는 범죄 경력 여부를 넘어 귀화 후 행위까지 문제 삼는 방향으로 관련 지침을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현지시각)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6월 발송한 법무부 내부 메모에서 “시민권 취득 과정에서 위법 행위나 허위 진술이 있었던 경우는 물론, 귀화 이후 국가안보 위협이나 중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도 시민권 박탈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메모는 브렛 슈메이트 법무부 민사국 차관보 명의로 작성됐다.

이번 조치는 미국 내 약 2450만명의 귀화 시민, 특히 전체 귀화자의 23%가 거주하는 캘리포니아주 이민자 사회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 귀화 시민 누구나 표적 될 수 있다는 우려


전문가들은 법무부의 새로운 기준이 매우 포괄적이고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버지니아대 법학과의 아만다 프로스트 교수는 “거의 모든 귀화자의 이민 서류에서 하나쯤은 형식상의 실수나 누락이 있을 수 있다”며 “이런 점을 확대 해석하면 누구라도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실제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와 뉴욕시장 민주당 후보인 조흐란 맘다니에 대한 시민권 박탈을 시사하기도 했다. 맘다니 후보는 팔레스타인 인권을 옹호해왔으며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ICE의 활동을 방해한다면 체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맘다니는 “대통령이 나를 체포하고 시민권을 박탈해 수용소에 넣고 추방하겠다고 협박했다”며 “이는 어떤 법도 어긴 적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조장하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 법원 판단까지는 시간 걸리지만 위협은 현실


귀화 시민에 대한 시민권 박탈은 형사소송과 민사소송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형사소송은 유죄 판결과 함께 최고 25년형이 가능하며 정부가 ‘합법적 시민권 획득을 가장한 사기’를 입증해야 한다. 피고는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배심원 재판도 진행된다.

반면, 민사소송은 정부가 “중대한 사실을 숨기거나 의도적으로 허위 기재했다”는 점을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로 입증하면 시민권 박탈이 가능하다. 배심원이 없고 변호사도 스스로 구해야 한다. 프로스트 교수는 “정부가 입증만 하면 판사의 재량 없이 자동적으로 시민권이 취소된다”고 설명했다.

이전에는 나치 전범이나 전쟁범죄자처럼 극단적인 경우에만 적용됐던 제도가 이번에는 광범위한 ‘잠재적 위협자’ 전체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의 첫 임기였던 2017~2021년 사이에만 102건의 시민권 박탈 소송이 제기됐으며 이는 바이든 행정부 시기의 24건보다 4배 이상 많다.

◇ 캘리포니아, 귀화 시민 비중 높아 주요 타깃 우려


캘리포니아는 미국 인구의 11%를 차지하지만 귀화 시민은 5분의 1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조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 지목된다. 샌프란시스코 소재 미국이민·추방방어센터를 운영하는 빌 옹 힝 샌프란시스코대 교수는 “법적으로 연방정부를 막을 방법이 없다”며 “정말로 캘리포니아 주민을 겨냥한다면 그 누구도 이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대법원은 1967년 판례에서 ‘발언이나 행위’로는 시민권을 박탈할 수 없고 오직 귀화 절차상 위법이나 사기만을 근거로 해야 한다고 못박은 바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우회하기 위해 사소한 서류 누락이나 경미한 전과까지 문제 삼는 방식으로 비판적 인물에 대한 보복성 박탈을 시도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프로스트 교수는 “공식적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시민권을 박탈할 수 없지만, 표적이 된 인물의 귀화 서류를 뒤져 흠을 잡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탄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처벌이 아닌 위협’…공포 확산이 목적이라는 분석도


루커스 구텐태그 스탠퍼드대 법학과 교수는 “법원은 전통적으로 귀화 시민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지만 이번 조치는 법의 악용 가능성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제도가 본격적으로 남용되면 미국에 수십년 거주한 사람도 하루아침에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추방될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마이애미 헤럴드는 최근 실제 사례로 플로리다에 거주하던 영국 출신의 미군 출신 시민 엘리엇 듀크가 과거 독일 주둔 당시 아동 음란물 소지 혐의를 은폐하고 시민권을 취득한 사실이 드러나 지난달 연방법원에서 시민권을 박탈당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