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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中 청년 '취업 절벽'…"300곳 원서" 절규 속 무역전쟁이 고용한파 부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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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中 청년 '취업 절벽'…"300곳 원서" 절규 속 무역전쟁이 고용한파 부채질

역대 최다 1222만 졸업생 쏟아졌지만 민간·공공 동시 채용 축소
수출 기업 '탈미국' 생존 몸부림…"크리스마스 용품, 내수론 안 팔려"
지난 11일 중국 북부의 한 도시에서 열린 취업 설명회에 몰린 청년 구직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기업 정보를 살피고 있다. 올해 중국에서는 역대 가장 많은 1222만 명의 졸업생이 쏟아졌지만, 경기 둔화와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취업 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사진=닛케이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11일 중국 북부의 한 도시에서 열린 취업 설명회에 몰린 청년 구직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기업 정보를 살피고 있다. 올해 중국에서는 역대 가장 많은 1222만 명의 졸업생이 쏟아졌지만, 경기 둔화와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취업 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사진=닛케이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미·중 무역 마찰의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청년 고용 시장에 유례를 찾기 힘든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다고 닛케이가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6월에 대학을 막 졸업한 청년들은 극심한 취업난에 직면했으며, 관세 폭풍을 맞은 수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15일, 올해 2분기(4~6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2%(전년 동기 대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1분기 성장률(5.4%)을 밑도는 수치로, 장기화하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무역 갈등이 경제 전반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경제 상황은 고스란히 고용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1일 중국 북부의 한 지방 도시에서 열린 취업 설명회는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정보기술(IT), 은행, 제조업 등 200여 개 기업이 부스를 차렸지만, 채용 담당자에게 질문을 쏟아내는 청년들의 표정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학생이 '갑'이 되어 기업이 구애하는 일본의 '구인자 우위 시장'과는 완벽히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특히 과거 인기 산업이던 부동산, 정보기술(IT), 금융 등 주요 분야의 채용이 크게 위축됐다.

올해 6월 허난성 정저우시의 한 대학원을 졸업한 후씨(24)의 경험은 현재 중국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반년간의 구직 과정을 돌아보며 "300개 회사에 지원해서 겨우 내정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대학원에서 측량 공학을 전공했지만, 부동산업계가 4년 전 거품 붕괴 이후 채용 문을 여전히 굳게 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졸업 전까지 취업하지 못하면 일용직으로 버티며 '취업 재수'를 할 각오까지 했다.

중국의 대졸자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2025년 대학 및 대학원 졸업생은 5년 전보다 40%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인 1222만 명에 이른다. 코로나19 시기 취업이 어려워진 학부생들을 위해 석사 과정 정원을 늘리면서 고학력자가 늘었지만, 고용 시장의 주축인 민간 기업들은 경기 불확실성과 정부의 통제 강화 기조 속에 신규 채용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대졸자 취업률은 약 55.5%에 그쳤으며, 이들을 흡수할 양질의 일자리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칭화대, 베이징대 등 소위 명문대 출신을 제외한 대다수 청년이 '취업 빙하기'를 맞고 있다.

공식 통계 역시 암울하다. 학생을 제외한 16~24세 청년 실업률은 지난 5월 기준 14.9%로, 전국 평균 실업률(5% 내외)의 약 3배에 달할 만큼 높다. 아직 통계에 잡히지 않은 졸업생들이 구직 시장에 대거 뛰어들 경우, 지난해처럼 여름을 기점으로 청년 실업률이 재차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엎친 데 덮친 격…고용 시장 덮친 무역 전쟁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중 무역 마찰은 고용 시장에 또 다른 악재다. 베이징의 한 인재 파견 업체 관계자는 "제2차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무역, 물류 업종의 채용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무역 마찰이 장기화하면 최대 9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비관적 예측도 나왔다.

수출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은 이미 변화에 대응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100엔 숍의 고향'으로 불리는 저장성 이우시의 '이우 국제상무성'. 이곳의 한 크리스마스용품 업체 대표는 "관세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몰라 미국에서 받은 25년 치 주문량을 미리 생산해 전부 출하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제네바 합의로 8월 초까지 90일간의 '관세 휴전' 기간이 생기자, 이를 이용해 서둘러 물량을 밀어낸 것이다.

◇ '세계의 공장'도 한숨…탈미국·내수 전환 '사투'


동시에 '탈미국' 현상도 가속화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영어 'Merry Christmas' 대신 스페인어 'Feliz Navidad'가 적힌 상품이 부쩍 늘었다. 한 장식품 업체는 "미·중 무역 마찰 탓에 몇 년 전부터 남미 시장 공략을 강화해왔다"고 말했다. 포장지 가게 직원은 지난 4월 미국의 고관세 부과 당시 주문 취소를 겪은 후 "중동 등 미국 외 다른 고객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와 유통 대기업들이 내수 소비 촉진으로 타개책을 모색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한 크리스마스용품 업체는 "중국 내에서는 크리스마스용품이 팔리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시진핑 지도부가 자국 전통문화 부흥을 강조하면서 외래문화인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분위기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그는 "핼러윈 등 다른 상품을 개발해 수주를 늘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처럼 중국의 청년 취업난은 복합적 요인이 얽힌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으며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국유기업과 공공부문마저 채용을 최대 30~60%까지 줄이면서 안정적인 일자리의 문은 더욱 좁아졌다. 정부가 해마다 1200만 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 창출 목표를 내걸었지만, 고학력 졸업생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청년층 사이에서 '탕핑(드러눕기)' 현상이 확산하고 사회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