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 중인 강경한 이민 정책이 장기요양 산업의 인력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요양원과 재가간병업체들은 합법 체류 중인 이민자들의 추방 보호 조치가 해제되면서 인력 손실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서비스 질 저하와 비용 상승 등 연쇄적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임시 보호 신분(TPS)과 인도적 체류 허가 등 임시 합법 체류 제도에 대한 종료 절차에 착수하면서 장기요양 산업 전반에 인력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고 1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이민자 의존도 높은 요양 산업…28%가 외국 출신
케이티 스미스 슬로운 ‘리딩에이지’ 회장은 NYT와 인터뷰에서 “최근 몇 주 사이 전국 곳곳의 요양시설에서 일부 간병인을 해고하거나 출근을 중단한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이 현장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이 자신이나 가족에 대한 추방 우려 때문에 자발적으로 출근을 멈추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 트럼프, 임시 체류자 추방 보호 종료…수천명 해고 위기
문제의 핵심은 트럼프 행정부가 쿠바·아이티·니카라과·베네수엘라 출신 이민자 약 50만명에게 부여됐던 임시 보호 프로그램을 폐지하려는 데 있다. 지난 5월 말 연방대법원이 이같은 정책 추진을 일단 허용하면서 수천명의 요양 인력이 일터를 떠날 처지에 놓였다.
대표적 피해 사례는 플로리다 보카레이턴 지역의 ‘시나이 레지던스’다. 이 시설의 최고경영자(CEO) 레이철 블럼버그는 NYT에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로 인해 아이티와 쿠바 출신 직원 10명을 해고했으며 앞으로 28명을 추가로 내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체 인력의 9%에 달한다.
보스턴의 ‘로럴리지 요양센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시설의 콜린 오리어리 센터장은 “전체 요양보조 인력 중 약 10%가 아이티 출신 TPS 대상자”라며 “대체 인력을 찾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결국 비용을 줄이기 위해 프로그램 축소나 유지보수 연기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급여 인상도 한계…시설 폐쇄 우려까지”
요양업계는 이민자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해 평균 10% 수준의 임금 인상을 단행하고 있지만 재정 여력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그 부담이 요양 서비스를 받는 노인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트리뷰트 홈케어’의 존 스니스 최고경영자(CEO)는 NYT에 “최근 9명의 간병인을 해고했고, 다음달에는 6명을 더 내보낼 가능성이 있다”며 “이들은 수년간 노인과 정서적으로 유대 관계를 맺어온 인물들로 이별 자체가 노인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그래보스키 하버드대 의과대학 교수는 “요양시설 인력 부족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서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라며 “낙상, 탈수 같은 안전사고는 물론 정서적 고립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미국인 채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엔 “현실과 동떨어져”
일부 보수 성향 단체는 “이민자 대신 미국인을 고용하면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민 제한론을 지지하는 ‘이민연구센터’의 연구국장 스티븐 카마로타는 “임금과 복지를 올리면 미국인 노동자도 충분히 유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무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블럼버그 CEO는 “미국인들이 육체적으로 힘들고 감정 노동이 심한 요양보조 일자리를 원하지 않는다”며 “그래서 우리는 이민자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기요양 노동자의 평균 시급은 2023년 기준 16.72달러(약 2만3100원)로 패스트푸드나 리테일 산업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반면 신체 활동량과 감정 소진은 더 크다.
이와 관련해 이민정책연구소의 줄리아 겔랫 부국장은 “현재와 같은 출산율 정체 상황에서는 노인 돌봄 인력 충원을 위해서라도 이민자 유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