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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EU 무역합의, EU 손익 따져보니…손해는 크고 이득은 제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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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EU 무역합의, EU 손익 따져보니…손해는 크고 이득은 제한적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 27일(현지시각) 영국 스코틀랜드의 트럼프 소유 골프장에서 합의한 새로운 미국과 EU 간 무역협정은 극히 일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부분의 유럽 수출품에 15%의 미국 관세가 적용되는 반면, 자동차·항공·반도체 분야 등 일부 산업만 예외로 분류돼 그나마 타격을 피했다.

29일(현지시각) 폴리티코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아직 문서로 확정되진 않았지만 사실상 기본 관세율 15%를 EU 수출 전반에 적용하고 EU가 미국으로부터 매년 2500억 달러(약 355조7500억 원)의 에너지 제품을 구매하기로 하는 등 대규모 지출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같은 수입을 통해 EU의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을 종식시키겠다고 밝혔다.

◇ 에너지: 현실성 떨어지는 ‘7500억 달러’ 구매 약속


이번 합의에 따라 EU는 총 7500억 달러(약 1067조2500억 원) 규모의 미국산 석유, 액화천연가스(LNG), 원자력연료 등을 수입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EU의 미국 에너지 수입량을 3배 이상 확대해야 가능한 수치로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이행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수입이 지난해 230억 유로(약 33조1300억 원)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미국산으로의 완전 전환은 EU 민간 수입업체 구조상 통제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 자동차: 유럽은 ‘제로 관세’, 미국은 ‘기준치 15%’


양측은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해 상호 관세 조정을 합의했다. 미국은 자국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EU는 기존 10% 관세를 철폐한다. 그러나 독일 자동차 업계는 이 조정이 오히려 부담을 키운다며 비판했다. 독일 자동차연구소(CAR)의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소장은 “미국 생산으로 전환하려는 기업이 늘어날 경우 최대 7만명 일자리가 유럽 내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멕시코산 차량과 부품에 대해서는 미국이 여전히 25%의 고율 관세를 유지하면서 양측 업계 모두 불만을 나타냈다.

◇ 항공: ‘제로 관세’로 갈등 봉합…양측 항공사 안도


양측은 모든 항공기와 부품에 대한 ‘제로 관세’에 합의하며 2021년 마무리된 에어버스-보잉 분쟁 이후 또 다른 무역전쟁 가능성을 차단했다.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보잉보다 에어버스를 운영하는 델타항공, 스피릿항공 등 미국 항공사들이 관세 충격을 피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항공기 리스 기업들도 양측의 관세 보복 대상이 될 수 있었던 만큼 안도하는 분위기다.

◇ 제약: ‘국가안보’ 명목 15% 관세 가능성 여전


트럼프 대통령은 제약 분야가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반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포함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는 현 시점에서는 제로 관세를 유지하되, 미국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제약 제품에 최대 1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섹션 232’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저가 복제약(제네릭)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이같은 관세 부과가 수익성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며 구체적 면제 목록을 요구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경제계 대표단체인 아이벡(Ibec)은 “EU가 완전히 굴복했다”고 평가했다.

◇ 기술·반도체: ASML은 수혜, EU 기술주권은 후퇴


이번 합의에는 반도체 장비 부문이 ‘제로 관세’ 대상에 포함됐다. 네덜란드의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ASML은 미국의 관세 불확실성으로 지난달까지 성장 전망을 유보했으나 합의 발표 이후 주가가 4% 상승했다. 다만,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EU의 인공지능(AI) 공장을 미국산 AI 칩으로 가동하겠다”고 밝힌 점은 EU 내 기술주권 강화 기조에 역행한다는 평가다.

◇ 디지털 규제: EU 규제 자율성 지켜내


디지털세 및 디지털 규제 분야에서는 아무런 조항도 포함되지 않았다. EU는 미국 측의 규제 완화 요구를 전면 거부했고, EU 집행위는 “디지털시장법(DMA), 디지털서비스법(DSA) 등 규제 자율성을 지켜냈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불만을 드러냈다.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는 EU 디지털 규제로 인한 연간 손실액이 976억 달러(약 1389조6000억 원)에 이른다는 자체 보고서를 발표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