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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유럽, 펜타닐보다 강력한 '니타젠' 공포 확산…치사량 0.4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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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유럽, 펜타닐보다 강력한 '니타젠' 공포 확산…치사량 0.4mg

자신도 모르게 복용…오페라 가수 등 일반인 희생자 잇따라
중국서 온라인 거래, 갱단 통해 전세계 유통…국제 공조 시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16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펜타닐 규제 법안(HALT Fentanyl Act)'에 서명하기에 앞서 연설하고 있다. 미국이 펜타닐과의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유럽에서는 펜타닐보다 강력한 신종 마약 '니타젠'이 확산하며 새로운 공중 보건 위기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16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펜타닐 규제 법안(HALT Fentanyl Act)'에 서명하기에 앞서 연설하고 있다. 미국이 펜타닐과의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유럽에서는 펜타닐보다 강력한 신종 마약 '니타젠'이 확산하며 새로운 공중 보건 위기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로이터
펜타닐이 서방 세계에 최악의 마약 위기를 불러온 데 이어, 이를 훨씬 웃도는 신종 합성 오피오이드 '니타젠(Nitazenes)'이 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며 새로운 공중 보건을 위협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니타젠은 각국 보건 당국이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빠르게 번지며 이미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문가들은 1980년대 에이즈 사태 이후 영국이 맞은 가장 큰 공중 보건 위기라고 경고하고 있다.

대부분 중국에서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니타젠은 펜타닐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를 지닌 신종 합성 오피오이드다. 아주 적은 양만으로도 치명적 과다 복용을 초래하며, 주로 헤로인이나 위조 진통제, 항불안제는 물론 코카인, 케타민 같은 향정신성 약물에 섞인 형태로 유통된다. 사용자 대부분이 자신도 모르게 니타젠을 투약하는 실정이라 위험은 더 크다.

길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유통되는 니타젠의 효능은 헤로인의 50~250배, 펜타닐의 최대 5배에 이른다. 미국화학회 자료에 따르면, 펜타닐의 치사 가능량이 2mg인 데 반해 니타젠 계열인 이소토니타젠은 0.4mg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독성 검사에서 니타젠 항목이 빠져 있어, 공식 사망자 통계는 실제 피해 규모를 훨씬 밑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 일반인까지 파고든 '그림자 살인자'


미국의 오피오이드 대유행을 비껴갔던 유럽은 니타젠 확산의 최전선에 섰다. 영국 정부에 따르면 올해 1월까지 최근 18개월 동안 니타젠 관련 과다복용 사망자는 최소 400명에 이른다. 이런 비극은 영국뿐 아니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아일랜드, 독일,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 전역에서 보고가 잇따른다.

최근 유럽에서 니타젠 검출이 세 배나 늘어난 사실은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영국의 마약·알코올 치료 기관 '체인지 그로우 라이브'의 비키 마르키에비츠 상임이사는 "1980년대 에이즈 위기 이후 영국 마약 사용자들이 맞닥뜨린 가장 큰 공중 보건 위기일 것"이라며 "대부분 사용자가 다른 약물에 섞인 형태로 자신도 모르게 니타젠을 복용한다는 점이 특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영국 국립범죄청(NCA) 역시 니타젠 때문에 "마약을 하기에 지금보다 더 위험한 시기는 없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이 비극은 평범한 가정에도 파고들었다. 대표적 사례는 2023년 유망한 오페라 가수였던 알렉스 하품(23)의 죽음이다. 그는 잠을 자기 위해 불법으로 산 자낙스를 먹었다가 숨졌으며, 사인은 니타젠에 오염된 약물로 밝혀졌다. 그의 어머니 앤 재크스는 아들의 사인을 '성인 급사 증후군'으로 결론 내린 검시관의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조사에 나서 진실을 밝혔다. 재크스는 "내 아들의 죽음을 내가 직접 조사해야만 했다"며 "마치 내 아이가 살해당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이 사건은 니타젠이 전통 오피오이드 사용자뿐 아니라 위조 처방약을 구하는 일반인에게도 얼마나 치명적 위협이 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 '지하 실험실'서 제조…온라인 타고 전세계로


니타젠은 이미 국제 문제로 번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9년 이후 최소 4300건의 마약 압수에서 니타젠이 나왔으며,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멕시코 카르텔이 중국 공급망을 통해 니타젠을 미국으로 대량 들여올 가능성을 경고했다. 또한 서아프리카에서는 '쿠시(kush)'라는 합성 마약의 주성분으로 니타젠이 쓰여 수천 명의 사망자를 냈고,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브리스톨 대학교의 합성 오피오이드 전문가인 애덤 홀랜드는 "니타젠은 모든 대륙에서 나오는 국제 문제"라며 "원료 화학물질을 합법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어 싸고 쉽게 합성할 수 있다는 점"이 확산을 부추긴다고 분석했다. 또한 "효능이 워낙 강해 적은 양으로도 시장 수요를 맞출 수 있어 밀수가 쉽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WSJ 취재 결과, 중국 공급업자들은 온라인 장터에서 '연구용 화학물질'이라는 명목으로 공개적으로 니타젠을 팔고 있었다. 중국 당국이 일부 규제를 강화했음에도 새로운 파생 물질이 계속 나와 단속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영국 국립범죄청의 찰스 예이츠 부청장은 "마약상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값싼 니타젠을 들여와 증량제와 섞어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니타젠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 공조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주 강한 독성과 광범위한 오염, 탐지의 어려움으로 펜타닐을 뛰어넘는 위협으로 평가되는 니타젠에 맞서려면 감시 강화, 위험 감소 대책, 시민 교육, 원료 화학물질에 대한 더 강력한 통제가 시급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