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관세 6배 뛰어…한미 FTA 사실상 무력화
USMCA, 2026년 7월 첫 재검토…북미 공급망 재편 신호탄
USMCA, 2026년 7월 첫 재검토…북미 공급망 재편 신호탄

◇ '힘의 논리' 앞세운 미국…영국 '선방' 속 동맹은 '타격'
이번 협상의 명백한 승자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시아 소사이어티 정책 연구소(ASPI)의 웬디 커틀러 부소장은 "일본, 한국, 유럽연합 같은 주요 교역 상대국들은 더 높은 관세나 보복 조치를 피하려고 미국에 유리한 조건을 수용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관세 협상에서 명백한 승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캐나다 자문회사 스트래티지콥의 제프 마혼 이사 역시 "미국이 막강한 시장 지배력과 세계 경제의 중심 위치를 이용해 다른 나라들에게 일방적인 합의를 강요했다"며 단기 승자는 미국이라는 데 동의했다.
다만 승리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미국외교협회(CFR)의 종유안 조에 리우 선임 연구원은 "자초한 무역 시장의 혼란을 진정시키는 것이 승리라면 서둘러 협상을 마무리한 것은 승리로 볼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되돌리고 약속한 투자를 임기 안에 이루는 것이 목표였다면, 그 주장은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외에 또 다른 승자로는 영국이 꼽힌다.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이기도 한 커틀러 부소장은 "영국은 10% 상호 관세와 미국 자동차 시장 접근권을 유지하며 다른 교역 상대국보다 나은 결과를 얻었다"고 분석했다. 영국은 트럼프와 가장 먼저 합의해, 해마다 10만 대를 넘지 않는 조건이 붙었지만 기존에 제안된 25% 자동차 관세에서 15%포인트를 깎았다.
반면 미국의 오랜 동맹국들은 이번 협상 과정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봤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들은 아무런 특별 대우를 받지 못해 큰 타격을 입었다. 커틀러 부소장은 "이제 한국과 일본 자동차에는 똑같이 15% 관세율을 적용받아, FTA에 따른 한국의 2.5% 관세 이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번 15% 관세는 애초 미국이 제시했던 25%에서 낮아진 수치지만, 협상 과정에서 쌀과 쇠고기 시장의 추가 개방은 막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미 FTA가 사실상 힘을 잃고 큰 압박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캐나다는 더욱 심각한 처지다. 매클라티 어소시에이츠의 케이트 칼루트키위츠 수석 상무이사는 "주요 7개국(G7) 파트너 가운데 유일하게 고립된 나라는 바로 우리의 북쪽 친구들"이라며 35%의 높은 관세가 매겨진 캐나다가 "명백한 패자"라고 단언했다. 이 밖에도 라오스와 미얀마에는 40%라는 높은 관세율이 부과돼 섬유와 의류 수출이 직격탄을 맞았다. 시리아(4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미국 소비자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전미소매업협회(NRF)의 데이비드 프렌치 수석 부회장은 "높은 관세는 가격 인상, 고용 감소, 자본 지출 축소, 혁신 둔화를 가져와 소비자, 소매업체와 직원, 제조업체를 포함한 모든 미국인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소매업체들이 지금까지 가격 인상을 억제했지만, 새로운 관세는 몇 주 안에 상품 가격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다음은 북미 무역협정…공급망 전면 재편 예고
이번 협상 국면은 미중 관계가 근본부터 바뀌었음을 드러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제 무역 선임 국장을 지낸 칼루트키위츠는 "과거 트럼프 행정부가 불공정 보조금이나 강제 기술 이전 같은 중국의 행동 변화를 꾀했다면, 지금은 한쪽의 중국 희토류와 다른 한쪽의 미국 기술 수출 통제가 맞서는 공급망 전쟁이 벌어진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미국의 공세에 효과 있게 대응한다는 자신감을 얻은 듯 보인다. 리우 연구원은 "중국은 서둘러 워싱턴과 합의한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트럼프의 정책이 오히려 "중국의 경제 운용 문제에서 국제 사회의 관심을 돌리는 효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과거 '불확실성'의 원인으로 지목되던 중국이 오히려 안정성을 주는 나라로 비치는 반면, 미국을 '불확실성의 창조자'로 여기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 공급망의 핵심 축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은 이번 관세 폭풍에서 한발 벗어나 있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USMCA는 2026년 7월 1일 첫 공동 검토에 공식 들어간다. 이 검토에서 3국이 만장일치로 합의하면 협정은 16년 길어지지만, 합의가 깨지면 해마다 검토를 거쳐 2036년에 끝난다. 미국은 공식 검토를 위해 오는 10월부터 공청회 같은 준비 절차에 나서 2026년 1월까지 의회에 관련 생각을 보고할 계획이다.
토요타 자동차에서 USMCA 협상을 이끌었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유리 운노 겸임 연구원은 "북미를 하나의 생산 기지로 보고 투자한 기업들에게 복잡한 원산지 계산은 비생산적인 추가 부담"이라며 "부품 관세가 오르면 미국 내 생산의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USMCA의 변경을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순한 한 번의 정책이 아니라, 세계 무역 질서의 근본적인 틀 전환을 뜻한다고 입을 모은다. 칼루트키위츠는 "이것은 트럼프 현상이 아니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에서 오랫동안 옹호한 최혜국 대우 원칙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라며 "미국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마혼 이사 역시 "우리는 낡은 신자유주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경제-안보의 세계에 살고 있다"며 "과거 체제의 중심축이었던 미국이 이제는 힘을 앞세운다"고 분석했다.
관세가 '새로운 표준(뉴노멀)'으로 자리 잡으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북미를 단일 생산기지로 여겨 온 자동차 산업 등은 투자와 생산 전략을 전면 다시 짜야 한다. 보호무역주의와 힘의 논리가 판치는 새로운 시대가 본격 막을 올렸다는 진단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