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선진국 대부분이 과거 수준의 투자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 불확실성과 기업들의 배당 확대 기조가 투자 회복을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이다.
5일(이하 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알바로 페레이라 OECD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기업들이 새로운 프로젝트와 시설에 지출을 늘리지 않으면 각국은 더 이상 성장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페레이라는 최근 포르투갈 중앙은행 총재로 지명된 바 있다.
◇ 선진국 중 장기투자 회복한 국가는 단 두 곳
OECD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이던 회원국 중간값 기준 순투자 비율은 현재 1.6%로 감소했으며 코로나19 사태로 한층 더 타격을 입었다.
전 세계 34개 선진국 가운데 지난해 기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순투자 흐름을 회복한 국가는 이스라엘과 포르투갈 두 곳뿐이다. 캐나다·이탈리아·호주 등 6개국만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긴 상황이다.
OECD는 회원국 평균 투자 규모가 과거 추세 대비 20% 낮은 수준이며,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교해도 6.7%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디지털과 지식 기반 투자는 증가했지만 물리적 자산 투자의 약화와 감가상각 증가를 상쇄하지 못해 전체 순투자는 계속 하락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OECD의 진단이다.
◇ "트럼프의 관세 전쟁, 불확실성 심화시켜"
페레이라는 기업 투자 부진의 주요 요인으로 “지속적인 정책 불확실성”을 지목했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대형 위기가 반복되면서 불확실성이 전방위로 퍼졌다”면서 “투자가 더 늘어나지 않으면 결국 성장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OECD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 중인 관세 정책이 기업들의 장기투자 결정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주 국제통화기금(IMF)은 트럼프의 무역 전쟁이 예상보다 덜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로 상향했지만 이는 2024년의 3.3%보다 낮고 팬데믹 이전 평균치인 3.7%에도 미치지 못한다.
OECD 분석에 따르면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이 표준편차 1단위 증가할 경우 1년 뒤 기업 투자 증가율이 1%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글로벌 수요, 규제,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 속에서 장기 프로젝트 지출을 꺼리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 수익은 배당으로…투자는 외면
OECD는 금리가 낮아졌음에도 기업들이 수익성 있는 한계 투자조차 꺼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국가는 위기 이후 투자보다 배당 확대에 집중하면서 기업 자금 배분의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의 수자원 산업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FT에 따르면 영국 민영 수자원 기업들은 지난 34년간 830억 파운드(약 178조 원)를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이는 같은 기간 인프라 투자액(2300억 파운드·약 402조4000억 원)의 3분의 1을 웃도는 수준이다. 석유기업 BP도 최근 투자 축소를 요구하는 주주 압박에 직면한 바 있다.
OECD는 “현재의 높은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내년 말까지 실질 투자 증가율이 1.4%포인트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