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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호주에 1조 엔 규모 '모가미급' 호위함 첫 수출 방산수출 물꼬 터나(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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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호주에 1조 엔 규모 '모가미급' 호위함 첫 수출 방산수출 물꼬 터나(상보)

수출 길 연 '방위장비 이전 3원칙'…내수 의존 탈피 신호탄
록히드마틴과 매출 16배 차이…글로벌 경쟁력 확보는 과제
미쓰비시 중공업이 공개한 '모가미급' 호위함의 성능 향상형 상상도. 호주 해군은 이 함정의 도입을 결정했다. 사진=미쓰비시 중공업이미지 확대보기
미쓰비시 중공업이 공개한 '모가미급' 호위함의 성능 향상형 상상도. 호주 해군은 이 함정의 도입을 결정했다. 사진=미쓰비시 중공업
과거 내수 시장에만 안주하며 '골칫거리'로도 불린 일본 방위 산업이 마침내 수출 산업으로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6일(현지시각), 호주 해군이 차기 호위함으로 일본 '모가미급' 함정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 결정으로 일본은 사상 처음으로 전투함 완제품을 수출하게 됐다.

이번 계약은 총 1조 엔(약 9조 원) 규모에 이르며 연내 타결을 목표로 한다. 이로써 주 계약업체인 미쓰비시 중공업을 비롯한 일본 방산업계는 본격적인 성장 가도에 오를 발판을 마련했다. 호주 해군이 도입할 함정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최신예 '모가미급' 호위함을 기반으로 성능을 높인 모델로, 건조는 미쓰비시 중공업의 나가사키 조선소와 자회사인 미쓰비시 중공 마리타임 시스템즈가 맡는다.

함정의 심장인 고출력 엔진 'MT30'은 영국 롤스로이스 제품을 가와사키 중공업이 면허 생산하고, 감속 장치도 가와사키 중공업이 맡는다. 마스트와 하나로 이어진 독특한 모양의 레이더는 NEC가 개발했다. 일본 주요 기업들이 힘을 모아 '올 재팬' 체제로 만들었으며, 호주 해군이 받을 함정은 성능을 높인 모델로 미국산 미사일도 싣는다.

지금까지 일본의 방위 장비 수출은 미쓰비시 전기가 필리핀에 경계 관제 레이더를 판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최근 미쓰비시 중공업 등이 참여하는 일본·영국·이탈리아 3국의 차기 전투기 공동 개발 사업에서 제3국 수출길이 열렸고, NEC와 요코하마 고무가 만든 통신 안테나를 인도 해군에 수출하는 방안도 조율되는 등 방산 수출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

◇ 10년 묵힌 수출 규제 완화가 '기폭제'


일본 방위 산업이 이처럼 수출의 문을 연 바탕에는 정부의 과감한 정책 전환이 있다. 과거 방위 산업은 판매처가 사실상 방위성과 자위대뿐이어서, 한정된 수요에 맞춰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망과 고용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경제 성장이 멈추자 많은 기업이 사업에서 손을 떼는 등 위기를 겪었다.

흐름을 바꾼 것은 정부가 2014년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을 만들고, 2023년 말부터 이 원칙의 운용 지침을 풀어준 덕분이다. 정부는 높아지는 기술 수준을 자국 수요만으로 떠받치기 어렵다고 보고, 엄격한 조건 아래 방위 장비 수출과 국제 공동 개발을 허용했다. 이번 호주 수출은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산업을 키우려 한 노력이 낳은 눈에 띄는 첫 성과다.

◇ '골리앗'과 싸워야 할 '다윗'…첩첩산중 과제


앞날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세계 시장에서 일본 방산의 존재감은 아직 미미하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2023년 통계를 보면, 세계 1위인 미국 록히드 마틴의 방산 매출은 608억 달러(약 84조4876억 원)다. RTX(406억 달러), 노스럽 그러먼(355억 달러) 등 미국 기업들이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항공공업그룹(AVIC)의 매출도 208억 달러(약 28조9036억 원)나 된다.

반면 일본 1위인 미쓰비시 중공업의 관련 매출은 38억 달러(약 5조2804억 원), 가와사키 중공업은 20억 달러(약 2조7792억 원)에 그쳐 매출 규모가 자릿수부터 다른 큰 격차가 난다. 이러한 격차는 일본 방위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해외에서는 제조사가 직접 개발 전반을 이끄는 '시스템 통합' 역할을 하며 기술력을 쌓지만, 일본에서는 이 역할을 방위장비청이 맡아 기업이 기술력을 쌓기 어려웠다.

게다가 당장 자국 군대 수요를 맞추기도 빠듯해 수출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경제계에서는 공급망을 탄탄히 하고 수출을 지휘할 정부 조직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설비 투자 지원과 수출 허가 절차 간소화도 촉구하고 있다.

정부도 2022년 국가안전보장전략에서 방위 생산·기술 기반을 '방위력 그 자체'라고 밝혔고, 2025년 방위백서에서는 '유럽이나 미국처럼 국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기업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깊어지는 등 안보 환경이 나빠지면서 방위 예산은 늘고 있지만, 자국 시장에만 기대서는 성장에 한계가 뚜렷하다. 약 1조 엔(약 9조 원)에 이르는 이번 호주 함정 수출을 기회로 삼아, 일본 방위 산업이 정부와 손잡고 스스로 성장 전략을 세워 국제적인 강자로 뛰어오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