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가운데 제3국을 경유하는 ‘환적’ 상품에 최대 4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가 시행돼 전 세계 수입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9일(이하 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특정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이 다른 나라를 거쳐 미국에 들어올 경우 관세 회피를 막기 위해 이같은 조치를 도입했지만 세부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 ‘불법 행위’에 합법적 과세?...업계 혼선
미국에서는 이미 중국산 제품을 베트남산으로 속여 들여오는 행위 등 허위 원산지 표시가 불법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가 환적 상품에 대해 별도의 40% 관세를 매기는 것은 “현재 금지된 행위를 합법화하고 세금을 매기는 것과 같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순 환적 방지보다 더 광범위하게, 중국산 부품이 포함된 제3국 완제품에도 고율 관세를 부과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대변인은 “정부는 환적과 다른 관세 회피 수법에 ‘제로 톨러런스’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며 부품 수준까지 관세 확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부품·원자재까지 확대 시 공급망 재편 불가피
미국이 부품이나 원자재까지 추적해 고율 관세를 매길 경우 제조업계는 수년간 공급망을 재편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동남아 국가들은 이미 중국산 직물, 전선, 화학제품 등을 들여와 완제품을 조립하는 역량을 갖췄지만 대체 생산 거점 구축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마크 부시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현재 무엇이 환적인지 정의조차 안 됐다”며 “과거 무역협정에서 보던 원산지 규정과 다른 방식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수입업계, ‘관망·분산 주문’ 전략
미국 관세청은 이번 제재와 관련해 관세 감면·면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미국 법무부는 관세 회피를 형사 처벌할 전담 사기수사팀도 신설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책 방향이 불확실한 만큼 대규모 공급망 변경 대신 단기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다.
공급망 관리 플랫폼 인스펙토리오의 마크 버스타인 수석부사장은 “고객들이 한 번에 대량 주문하는 대신 소량 주문을 자주 넣어 관세 부담을 분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략으로는 계약서에 “환적 시 발생하는 40% 관세를 공급업체가 부담한다”는 조항을 삽입해 책임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홍콩의 FTI컨설팅 샐리 펭 전무는 “규정이 명확해질 때까지 중국에 머무르겠다는 업체가 많다”며 “이것이 정책 의도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