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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타, 60% 늘어나는 '스트레처블 기판' 2025년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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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타, 60% 늘어나는 '스트레처블 기판' 2025년 양산

피부처럼 늘어나는 소재로 심장·뇌파 정밀 측정…의료용으로 첫발
교세라·산요카세이도 가세…日, '품질' 내세워 차세대 시장 주도권 경쟁
무라타 제작소는 잡아당기면 길이가 약 60% 늘어나는 기판을 양산한다. 사진=무라타 제작소이미지 확대보기
무라타 제작소는 잡아당기면 길이가 약 60% 늘어나는 기판을 양산한다. 사진=무라타 제작소
스마트폰과 AI 서버의 뒤를 이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웨어러블 기기가 부상하면서, 일본의 대표 전자부품 기업들이 인체에 직접 부착하는 첨단 부품 양산에 본격적으로 나선다고 10일(현지시각)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보도했다. 높은 기술력과 안전성을 앞세워 미래 시장을 선점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양산의 핵심은 질병의 조기 발견이나 건강 상태를 정밀 감시하는 신개념 전자 부품이다. 무라타 제작소와 교세라 등 일본 주요 기업들은 부드럽게 휘거나 늘어나는 전자 기판과 초소형 센서를 활용, 인체의 미세한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포문은 세계 1위 적층 세라믹 커패시터(MLCC) 기업인 무라타 제작소가 열었다. 무라타는 올해 안에 최대 60%까지 길이를 늘려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신축성 전자 기판인 '스트레처블 기판'의 양산을 시작한다. 얇은 금속 회로를 합성 고무의 일종인 '엘라스토머'로 감싸 구현한 기술로, 납품 계약을 맺은 의료기기 제조사의 국가 인증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전용 생산 라인을 가동할 방침이다.

이 기판은 신체 움직임에 맞춰 밀착 상태를 유지하면서 고정밀 생체 데이터를 얻을 수 있어 심장 박동이나 뇌파를 측정하는 의료기기에 우선 적용한다. 피부가 민감한 영유아에게도 자극이 적고, 며칠간 착용해도 내구성을 유지하는 점 또한 특징이다.
과거에도 유연한 기판 소재가 있었지만 기존 소재의 낮은 절연성과 단락(합선) 문제로 복잡한 회로 구성이 어려웠다. 하지만 무라타는 소재 설계와 공정 기술을 최적화해 이를 극복하고, 엘라스토머 기판에 센서와 복잡한 회로를 일체형으로 그려 넣어 뇌파 측정 등의 정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무라타 제작소의 나카지마 노리오 사장은 "2040년쯤에는 인간의 기능을 확장하는 새로운 개념의 전자기기 수요가 크게 늘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부드러운 소재의 전자 부품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의료 분야를 시작으로 앞으로 자동차 전장 부품 등으로 적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 교세라·산요카세이…日 부품업계 '웨어러블' 기술 경쟁


다른 일본 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교세라는 이어폰에 내장해 귓속 혈류를 측정하는 초소형 센서를 개발했다. 적혈구에 레이저를 쏴 반사되는 빛을 AI로 분석해 수면의 깊이를 파악하는 기술이다. 사용자가 가장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에 알람을 울려주는 등 다양한 서비스에 접목할 수 있다. 교세라는 가고시마 공장에서 시제품을 생산 중이며, 2026년부터는 센서가 탑재된 이어폰 등 완제품 양산에 돌입한다.

산요카세이공업은 도쿄대학과 손잡고 통증이 거의 없는 미세 바늘로 체액을 분석하는 센서를 개발 중이다. 50마이크로미터(μm) 굵기의 바늘이 피부 표층에서 채취한 체액으로 스트레스와 피로도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올해 안에 임상 연구를 목표로 운전자나 운동선수의 컨디션 관리 서비스로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외에도 도쿄대학 스타트업인 파이 크리스탈은 피부에 붙여 맥박을 재는 신축성 유기 반도체 양산을, 다이닛폰 인쇄는 심전도 측정용 패치형 기기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 '품질·안전성'으로 시장 주도권 되찾나


캐나다의 시장조사 업체 프레시던스 리서치는 이와 같은 플렉시블 전자기기 시장이 2024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해 2034년에는 838억 달러(약 116조6077억 원)에 이르는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 전자정보기술산업협회(JEITA)에 따르면 2024년 일본 전자부품 업계의 생산액은 10조5600억 엔(약 99조4297억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하지만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00년대 40%대에서 2023년 33%까지 하락해 위기감이 커졌다.

이러한 가운데 '인체 부착형' 전자부품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카지마 유키 난잔대학(南山大学) 경영학부 교수는 "인체에 직접 닿는 제품은 무엇보다 높은 수준의 안전성과 품질이 요구된다"며 "일본 기업들이 가격 경쟁을 앞세운 아시아 경쟁사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차별화된 분야"라고 진단했다.

기존의 경쟁 전략을 넘어, 품질과 안전성에서 확보한 우위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직접 창출하려는 일본 전자업계의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