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로 엔비디아 대체…국영기업은 100% 화웨이 칩으로
성능·제조 한계는 숙제…"첨단 분야는 당분간 美 의존 불가피"
성능·제조 한계는 숙제…"첨단 분야는 당분간 美 의존 불가피"

상하이시 정부 계획을 보면, 2027년까지 AI 데이터센터에 쓰는 반도체 가운데 중국이 독자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술 비중을 70% 넘게 높인다. 정부 기관이 몰린 수도 베이징시는 한발 더 나아가 같은 기간 안에 자급률 100%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미국 애플 데이터센터 등이 있는 구이저우성 구이안신구 역시 짓고 있는 AI 데이터센터의 반도체 90%를 중국산으로 채우라고 요구한다. 중앙정부 방침에 따라 지방정부가 실행 계획을 따로 세워 함께 추진하는 중국식 '계획경제형 AI 기반시설 구축' 방식이다.
지방정부의 이런 발 빠른 움직임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끄는 중앙 지도부의 강력한 의지에서 비롯됐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AI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 때문에 위기감을 느낀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지난 4월 AI 관련 집체학습에서 시 주석이 "차세대 AI의 빠른 발전에 대응해 새로운 거국 체제의 이점을 발휘, 자립자강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AI 반도체와 양자, 클라우드 등 핵심 기술에서 미국 의존을 벗어나겠다는 노선을 공식화한 것이다.
◇ 엔비디아 독주 막는 화웨이 '어센드'
현재 중국 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초를 기준으로 엔비디아의 시장 점유율은 80%에 이른다. 중국은 이 구도를 깨려고 화웨이의 AI 반도체 '어센드(昇騰) 910' 시리즈를 전면에 내세웠다. 주력 제품인 '910B'는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모델 'H20'의 85% 수준 연산 능력을 갖췄고, 차세대 제품 '920'은 H20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어센드 칩은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중신궈지(SMIC)가 국유펀드의 지원을 받아 생산한다. 화웨이 말고도 바이두가 자체 개발한 '쿤룬(崑崙)' 칩을 자사 검색과 클라우드 서비스에 쓰고 있으며, AI 반도체 벤처기업인 캠브리콘(中科寒武紀) 등도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산시증권은 앞으로 5년 안에 엔비디아 점유율이 50~60%로 떨어지고, 화웨이를 앞세운 중국 기업들의 점유율이 40~50%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의 자국산 우대 정책은 시장에서 바로 효과를 내고 있다. 국유 통신 대기업 차이나모바일은 2024년과 2025년에 사들일 191억 위안(약 3조 7168억 원) 규모의 AI 서버용 반도체 전부를 화웨이 제품으로 채우기로 했다. 정부는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 등 민간 빅테크 기업에도 자국산 칩을 쓰도록 권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당국이 자국 기업, 특히 정부와 안보 기관에 H20 칩을 쓰지 말라고 강력히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민간 비안보 분야에서는 H20을 일부 허용하되, 공공·군사 등 전략 분야에서는 국산 칩만 쓰도록 강제하는 이중 전략을 쓰는 셈이다.
◇ '기술 자립' 외치지만…성능·제조 한계 뚜렷
하지만 '탈엔비디아'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기술 격차다. 화웨이 어센드 910B의 성능은 H20의 85% 수준에 그쳐 대규모 AI 모델을 학습시킬 때 처리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AI 벤처기업 딥시크는 화웨이 칩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학습 지연 같은 효율 저하 문제를 겪었다. SMIC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같은 미국산 핵심 장비를 쓸 수 없는 '제조의 한계' 역시 뚜렷하다. 이 때문에 3나노 이하 최첨단 공정으로 나아가지 못해 TSMC나 삼성전자와 기술 격차가 벌어져 있다.
중국은 단기 목표로 공공기관 중심으로 국산 칩 채택을 늘리고, 중기 목표로 2030년까지 자급률 70%를 이뤄 독자적인 AI 반도체 생태계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다만, 최고 성능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여전히 엔비디아의 최상위 GPU에 일부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인 기술 자립은 SMIC의 3나노 이하 첨단공정 국산화 성공과 미국의 추가 제재 수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실용성보다 전략 안보를 앞세우는 흐름 속에서, 당분간 중국은 엔비디아와 자국산 칩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