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기술 수출국으로 변모…사우디는 내수 집중으로 대조
미·중 갈등과 서방 제재가 최대 변수…복잡한 법규도 걸림돌
미·중 갈등과 서방 제재가 최대 변수…복잡한 법규도 걸림돌

에지 그룹(EDGE Group)의 하마드 알 마라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월 '인도 디펜스 엑스포 & 포럼'에서 "인도네시아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며 몇 달 안에 현지 사무소를 열겠다고 밝혔다. 걸프 지역 방산업체와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교류가 급증하는 흐름을 뚜렷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걸프 국가 가운데 아시아와 방산 협력을 이끄는 나라는 단연 UAE다. UAE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관계를 넓히는 데에는 크게 네 가지 까닭이 있다. 첫째, 전략상 자율성을 키우기 위해 정치·경제 동맹과 방산 장비 공급처를 다양하게 하려는 것이다. 둘째, 아시아 국가들과 손잡고 중국 노린코(NORINCO)의 무인 항공기(UAV)나 인도 힌두스탄 항공(HAL)의 가스터빈 엔진 같은 독자 기술과 지식 재산을 확보할 수 있다. 셋째, 해외 공동 생산은 자국 방위 산업 역량을 키우고 공급망 회복력을 높인다. 특히 현지 생산은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지 상표'로 인식돼 협력 상대국의 수요를 공략하는 데 유리하다. 넷째, 사우디아라비아 군수산업(SAMI) 같은 역내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아시아 시장을 선점하려는 의도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움직임은 이에 견줘 더디다. 사우디는 자율성을 뚜렷하게 내세우지 않고, 방산 전략에서 공급망 회복력을 우선한다는 증거도 명확하지 않다. 대부분의 협력 사업이 아시아가 아닌 자국 안에서 이뤄지는 등 기술을 이전받는 처지에 머물러 있다.
◇ UAE는 '수출국', 사우디는 '수입국'…접근법 엇갈려
UAE와 사우디는 아시아와 협력하는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UAE가 기술 수출국으로 변모하는 반면, 사우디는 여전히 기술 도입에 의존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에지 그룹은 말레이시아의 케텍 아시아(Ketech Asia)와 소총 현지 생산, 인도의 힌두스탄 항공(HAL)과 드론·미사일 공동 개발, 인도네시아 PT 핀다드(PT Pindad)와 탄약 생산라인 설치 계약을 맺는 등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공동 연구개발(R&D)에 힘쓰며 상대의 기술과 노하우를 빠르게 흡수한 UAE는 특히 한국과의 협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UAE 타와준 위원회는 2023년 1월 한국 방위사업청(DAPA)과 방산 협력을 심화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고, 같은 달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는 다목적 수송기를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2년부터 UAE는 단순히 기술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공급자로 나서고 있다.
반면 사우디 군수산업(SAMI)과 방위산업청(GAMI)은 '비전 2030' 계획에 따라 부품 국산화와 현지 생산 비중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사우디는 싱가포르 ST 엔지니어링의 도움을 받아 무인 수상정(USV)을 개발하고, 인도 바라트 일렉트로닉스(BEL)와 핵심 기술을 자국에 이식하는 계약을 맺는 등 주로 기술 이전에 힘을 쏟는다. 터키 바이카르(Baykar)와 드론 현지 생산 계약을 맺는 등 일부 진전도 있지만, 대부분의 협력은 자국 내에서 기술을 받아들이는 수준에 머문다. 한국의 한화와 2019년 군수품 현지 생산을 위한 합작 투자를 논의했지만 2025년 6월까지 결실을 보지 못했다.
◇ 지정학 리스크·법규 제약, 협력의 그림자
이러한 움직임에도 걸프 국가와 아시아의 방산 협력에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한다. 가장 큰 장애물은 지정학적 위험과 이로 인한 법과 정치의 제약이다.
서방의 제재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2023년 미국 방산업체 RTX는 사우디 스코파 디펜스(Scopa Defense)의 관계사가 제재 대상인 중국, 러시아 기업과 얽힌 사실을 파악하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방공 시스템 공장 설립 계약을 철회했다.
중국 기업과의 관계 또한 언제든 압박받을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다. 미국이 자국 군사 기술 접근을 조건으로 UAE와 사우디에 중국과의 관계 축소를 요구할 경우, 현재 진행 중인 협력 사업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아시아 국가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점도 변수다. 한국과 일본의 방산 시스템에는 미국산 부품이 많이 포함돼 기술 이전이나 공동 생산에 제약이 따른다. 일본은 분쟁 발생 가능성이 있는 국가에 대한 방산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중동 분쟁에 얽히는 것을 경계한다. 여기에 국가마다 상이한 기술 이전(TDT)의 정의, 재수출 허가 문제, 지식재산권(IP) 보호, 군·민 겸용 기술 규제 같은 복잡한 법규가 협력의 발목을 잡는다.
앞으로 UAE는 아시아 시장 선점 효과를 바탕으로 동남아, 남아시아 등에서 현지 생산을 통한 기술 수출을 더욱 늘릴 전망이다. 실제로 2025년 열린 '인도-에지 세미나'에서는 드론, 정밀 유도탄, 사이버·AI, 우주 분야에서 다각적인 협력 방안이 논의되는 등 협력의 폭을 넓히고 있다.
반면 사우디는 '비전 2030'에 따라 당분간 자국 내 기술 혁신 기반을 닦고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등 내실을 다지는 정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의 서로 다른 접근법과 미·중 갈등, 서방의 제재 강화 같은 대외 변수가 맞물리면서 아시아-걸프 방산 협력의 미래에는 기회와 불확실성이 공존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