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1B 비자 부족으로 불법 취업 급증…"하늘의 별 따기" 현실
대미 투자 43.7% 집중하며 인력난 심화…"합법 경로 확보가 관건“
대미 투자 43.7% 집중하며 인력난 심화…"합법 경로 확보가 관건“

특히 한국기업들의 미국 진출이 급증하면서 합법 비자 부족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확인된 것이다. 지난 4일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에서 475명이 체포된 사건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배런스는 지난 5일(현지시각) 연방 당국이 조지아주 엘라벨 건설현장을 급습해 "불법 노동자" 475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스티븐 슈랭크 특수요원은 기자회견에서 "체포된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 국적자"라고 밝혔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기업들이 원하는 전문직 취업비자(H-1B)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한국기업들은 최대한 H-1B 비자를 가진 인력을 확보하려 하지만, 이 비자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으로 어렵다. 결국 일부 인력이 단기 상용(B1) 비자나 전자여행허가제(ESTA)로 입국한 뒤 불법 취업을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 급증하는 대미 투자와 인력난의 딜레마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해외직접투자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3.7%로 198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4년 4월 기준 미국에 진출한 한국 사업장은 총 2432개에 이른다. 지난해 9월에는 한국이 사상 최초로 미국의 최대 투자국에 올랐다.
이번 체포 현장인 43억 달러(약 5조9700억 원) 규모 배터리공장은 내년 완공 예정으로 해마다 최대 30만 개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생산해 아이오닉 5 크로스오버와 3열 아이오닉 9 전기차를 제조하는 인근 현대차 공장에 공급할 계획이다.
그러나 투자 규모는 급증하는 반면 필요한 인력을 합법적으로 확보할 방법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건설업은 노동집약산업 특성상 많은 이민자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 추정 1100만 명이 건설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 중 4분의 1이 미국 밖 출생자로 상당수가 불법 체류 상태다.
대미 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충분한 H-1B비자 발급 확대가 중요한 상황이지만, 지난달 25일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서도 이런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트럼프 강경 단속으로 악순환 심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단속 정책은 이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저전압 작전(Operation Low Voltage)'으로 이름 붙인 이번 단속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인 지난 1월 시작된 '미국을 되찾기 위한 작전(Operation Take Back America)'의 일환이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 단일 현장 국토안보부 집행 작전으로 기록됐다. 구금자들은 조지아주 포크스턴 이민관세집행국(ICE) 구금센터에 수용됐으며,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정부가 자국민 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타원형 사무실에서 "그들은 불법 체류 외국인이었다"며 "ICE는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제조업 촉진을 경제정책의 초석으로 삼으면서도 불법 이민자 강력 단속을 동시에 추진하는 상반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슈랭크 특수요원은 "이번 작전은 조지아 주민과 미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법을 지키는 기업에 공정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6개월 동안 미국 노동시장에서 120만 명이 넘는 이민자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자가 미국 노동시장의 거의 20%를 차지하고 있어 건설업계 등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 합법 경로 확보가 해법
미국 이민협의회 미셸 라포인트 법무이사는 성명에서 "미국 이민 제도에는 합법 이민 방법이 부족하다는 근본 문제가 있는데, 지역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노동자들만 처벌하는 것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기업들이 미국 투자 시 비자 문제와 인력 확보 방안을 더욱 세심하게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건설업과 제조업 등 노동집약 산업에 진출하는 기업들의 경우 합법 인력 확보가 더욱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현대차는 하청업체에 직접 고용된 근로자는 없다고 밝혔고, LG에너지솔루션은 당국에 "사건 해결에 전폭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발표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