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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마스터카드, AI '에이전트 커머스' 시대 개막…결제 표준 선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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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마스터카드, AI '에이전트 커머스' 시대 개막…결제 표준 선점

AI가 쇼핑 목록부터 결제까지 대행…'체크아웃' 사라진다
개발자 툴킷·MCP 표준 첫 공개…비자·페이팔과 미래 결제 경쟁
마스터카드가 AI가 쇼핑과 결제를 대행하는 '에이전트 커머스' 시대를 선언하며 관련 기술 표준을 공개했다. 미래 결제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마스터카드가 AI가 쇼핑과 결제를 대행하는 '에이전트 커머스' 시대를 선언하며 관련 기술 표준을 공개했다. 미래 결제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사진=로이터
글로벌 결제 기업 마스터카드가 인공지능(AI)이 인간의 경제 활동을 대행하는 '에이전트 커머스' 시대의 기술 패권을 선점하기 위한 청사진을 17일(현지시각) 공개했다. 포브스 재팬에 따르면, 마스터카드는 업계 최초로 개발자 도구와 표준안을 제시하며 AI가 쇼핑부터 결제까지 전 과정을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미래 시장의 규칙 제정을 주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AI가 단순 정보 처리 도구를 넘어 자율적 경제 주체로 격상되면서, 결제 산업의 근본적인 재편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스터카드는 AI 에이전트가 소비자를 대신해 상품을 구매할 때 현재의 전자 결제 시스템과 똑같은 수준의 편의성과 신뢰성을 보장하는 새로운 기반시설 구축 계획을 공개했다. 이는 올해 초 도입한 '에이전트 페이(Agent Pay)'를 한 단계 발전시킨 구상이다. 당시 마스터카드는 승인된 AI 어시스턴트가 '에이전트 토큰'으로 거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번 발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에이전트 주도 상거래를 안전하고 확장성 있게 만드는 생태계 전반의 규칙과 기반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에이전트 커머스는 자율적인 생성형 AI 시스템이 사용자의 구매 대리인으로 활동하는 개념이다. 이 AI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과거 구매 이력과 선호도를 학습해 가격, 배송 속도, 취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설정한 예산 한도 안에서 최적의 구매를 자동으로 실행한다. 가령, 소비자가 "쇼핑 목록에 있는 식료품을 120달러 이내로 주문해서 목요일까지 배송해 줘"라고 지시하면, 에이전트는 사람의 추가 개입 없이 모든 과업을 완수한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전자상거래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소비자가 직접 '구매' 버튼을 누르는 익숙한 결제 과정이 사라지고, 추가 상품을 권하는 업셀링이나 크로스셀링 기회도 없어진다. 대신 소비자는 큰 틀의 규칙만 설정하고 모든 번거로운 과정을 AI에 위임한다. 편리함과 속도, 고도의 개인화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강력한 보안 장치가 없다면 통제할 수 없게 되어 의도치 않은 상품 구매, 금융 사기, 개인정보 노출 같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마스터카드의 크레이그 보스버그 최고 서비스 책임자(CSO)는 "AI 기반 결제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완전한 변혁"이라며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아직은 초기 단계로, 신뢰와 실행을 뒷받침할 기반시설은 완성되지 않았다.

'신뢰 기반시설'로 미래 시장 선점


마스터카드의 이번 발표는 미래 결제 시장의 '신뢰 기반시설'을 먼저 차지하려는 전략적 행보다. 핵심은 '에이전트 툴킷(Agent Toolkit)'과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CP)'이다. MCP 서버는 다양한 API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표준화해, 주요 대규모 언어 모델(LLM)과 손쉽게 연동을 지원한다. 개발자들은 이 툴킷으로 AI 기반 서비스에 결제 기능을 원활하게 통합한다.

또한 '에이전트 사인업(Agent Sign-Up)' 시스템을 통해 개발자가 자신의 AI 에이전트를 마스터카드 네트워크에 검증된 참여자로 공식 등록하게 했다. 소비자의 동의를 전제로 구매 패턴 등 유용한 정보를 에이전트에게 제공하는 '인사이트 토큰(Insight Tokens)'도 도입해 개인화 서비스를 강화한다. 마스터카드는 또한 은행, 가맹점, AI 개발자들이 이 기능들을 자사 제품에 신속하게 통합하도록 컨설팅 서비스도 제공한다. 마스터카드는 FIDO 얼라이언스 같은 표준화 기구와 협력해 구매자가 거래 조건(가맹점, 상품, 금액)을 승인했음을 증명하는 '검증 가능한 자격증명' 체계도 구축한다.

마스터카드는 올해 연말 쇼핑 시즌까지 미국 카드 회원들이 에이전트 페이를 이용하도록 하고, 이후 세계 시장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보스버그 CSO는 "결제는 에이전트 경험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며 "우리는 소비자와 개발자가 신뢰, 투명성, 정확성을 바탕으로 AI 에이전트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차세대 지능형 거래 기반시설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 경쟁도 치열하다. 비자는 '인텔리전트 커머스'라는 이름 아래 유사한 개념을 시험 중이며, AI 어시스턴트가 사람의 감독 없이 구매를 완료하도록 에이전트를 비자 네트워크에 직접 연결하는 시범 사업을 진행해왔다. 페이팔은 자사의 디지털 지갑을 AI 에이전트에 연동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개발자 생태계에 강점이 있는 스트라이프는 AI가 구독 관리나 청구서 발송 등을 처리하는 API를 구축하고 있다. 구글, 아마존 등 거대 기술 기업들도 자사 AI 어시스턴트에 결제 기능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책임 소재·사기 방지 등 넘어야 할 산 많아


에이전트 커머스가 대중화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가장 큰 난관은 책임 소재다. AI 에이전트가 실수로 잘못된 상품을 샀을 때, 그 책임을 소비자와 개발자, 판매자 가운데 누가 져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개인정보 보호와 금융 사기 역시 중요한 문제다. 소비자는 자신의 민감한 데이터를 어떻게 공유하고 활용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면 서비스 이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사람보다 AI 에이전트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 훨씬 더 복잡해 정교한 인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자신의 돈을 소프트웨어에 맡기는 일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상세한 알림 기능, 사용자가 언제든 개입할 수 있는 권한, AI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투명성 확보가 신뢰를 얻는 관건이 될 것이다.

만약 에이전트 커머스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결제'라는 행위는 과거의 유물이 될 수 있다. 결제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배경으로 물러나는 대신, 토큰, 자격증명, 권한 부여 등 '신뢰'를 보증하는 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마스터카드의 이번 승부수는 바로 이 신뢰 계층을 먼저 차지해 앞으로 펼쳐질 디지털 상거래의 중심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