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은행에 새로운 가스 탐사 등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지원을 늘릴 것을 압박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백악관 재잆성 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녹색 에너지·기후 정책을 대거 폐기했으며 이번에는 개발도상국 에너지 자금 조달을 겨냥하고 있다. 한 개발도상국 이사는 “미국이 모든 곳에서 가스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은행과 다른 다자개발은행들은 최근 수년간 기후변화 대응 압력으로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제약을 가해왔다. 세계은행 그룹은 지난 2019년 이후 신규 상류부문 석유·가스 프로젝트 자금을 원칙적으로 중단했고 2023년에는 2025년까지 연간 자금의 45%를 기후 분야에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6월 열린 세계은행 이사회 회의에서 미국은 신규 가스 매장지 발굴 사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강력히 지지했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이 전했다.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 총재는 이후 직원 이메일에서 “이사회가 상류부문 가스 참여 문제에 합의하지 못했으며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미국 재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각국의 에너지 우선순위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발언권과 투표권을 활용하고 있다”며 “상류부문 가스 자금 지원을 포함한 ‘모든 에너지 전략’은 경제 성장과 빈곤 감소라는 개발은행의 본래 사명을 되살리는 긍정적 조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미국이 세계은행뿐 아니라 다른 개발은행에도 공개적·비공개적으로 압력을 가해 녹색 금융 확대 기조를 약화시키고 가스 파이프라인 등 화석연료 투자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주요 주주로서 다자개발은행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전임 은행 총재 데이비드 맬패스는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비판 끝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 당시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세계은행이 에너지 전환 자금을 주도적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정반대 방향을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
경제학자들은 개발도상국이 오는 2035년까지 연간 1조3000억 달러(약 1781조 원)의 기후 자금이 필요하다고 추정하면서 세계은행 등 다자개발은행이 이 자금 공급의 핵심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미국은 올해 초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의 발언을 통해서도 “세계은행은 기술 중립을 지켜야 하며 이는 대부분 가스 같은 화석연료 투자 확대를 뜻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