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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인텔 파운드리, 누적 적자 18조 원 돌파…TSMC와 격차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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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인텔 파운드리, 누적 적자 18조 원 돌파…TSMC와 격차 확대

첨단 공정 지연과 외부 고객 확보 실패로 수익성 악화…사업부 매각설 대두
시장 점유율 1%대로 추락…64% 점유한 TSMC와 기술·수율 격차 뚜렷
인텔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이 끝 모를 부진에 빠졌다. 첨단 공정 개발 지연과 외부 고객 확보 실패로 누적 적자가 18조 원을 넘어섰고, 시장 점유율은 1%대로 추락해 업계 1위 TSMC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사진=인텔이미지 확대보기
인텔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이 끝 모를 부진에 빠졌다. 첨단 공정 개발 지연과 외부 고객 확보 실패로 누적 적자가 18조 원을 넘어섰고, 시장 점유율은 1%대로 추락해 업계 1위 TSMC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사진=인텔

'반도체 왕국'의 자존심을 걸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 다시 뛰어든 인텔이 수익성 악화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2년 넘게 조 단위 영업 손실을 낸 데 이어 올해 3분기에도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면서, 업계 1위 TSMC를 따라잡겠다던 'IDM 2.0' 전략이 뿌리부터 흔들린다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쌓인 적자 규모만 130억 달러(약 18조 원)를 넘어서자 투자자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사업부를 매각하거나 분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22일(현지시각) CNBC와 디지타임스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부(IFS)는 2024년 3분기 58억 달러(약 8조 원)에 이르는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이번 실적은 지난해 70억 달러(약 9조 원), 2022년 52억 달러(약 7조 원)의 연간 영업 손실을 기록한 데 이은 것이어서 시장에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쌓인 영업 손실이 180억 달러(약 25조 원)에 육박한다.

매출 역시 급감해 위기감을 더한다. 파운드리 사업부의 지난해 매출은 189억 달러(약 26조 원)로, 2022년 275억 달러(약 38조 원)와 비교해 31% 넘게 쪼그라들었다. 인텔은 종합 반도체 기업(IDM)에서 벗어나 외부 고객사의 반도체를 생산하는 순수 파운드리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실은 구식 공정과 외부 고객 부재라는 높은 벽에 부딪히며 '재정적 블랙홀'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술력 상실과 고객 부재…깊어지는 위기

전문가들은 계속되는 실적 부진의 핵심 원인으로 기술력 상실과 고객 확보 실패를 꼽는다. 인텔은 7나노, 5나노 등 첨단 공정 경쟁에서 뒤처졌을 뿐만 아니라, 생산 효율성과 수율 면에서도 TSMC와 삼성에 크게 뒤진다. 이 때문에 퀄컴, 아마존과 같은 대형 고객사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텔이 기대를 거는 18A(1.8나노급) 공정 역시 시장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기술 완성도는 물론 시장성에도 물음표가 붙는다.

반복되는 실적 충격에 시장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2023년 실적 발표 직후 인텔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4% 넘게 폭락했고, 로이터 통신이 "주요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하면 파운드리 사업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인텔의 경고를 보도한 뒤 주가 하락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상황이 나빠지자 업계에 따르면 인텔 이사회는 파운드리 사업부를 매각하거나 분사하는 방안까지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TSMC와 합작법인(JV)을 세우는 파격적인 방안까지 나오지만, 현실적인 과제는 여전히 많다.

시장에서 인텔의 처지는 더욱 초라하다. 올해 3분기 업계는 TSMC가 약 64%의 압도적인 점유율로 시장을 지배하고 삼성전자가 약 12%로 2위를 굳히는 동안, 인텔 파운드리의 점유율은 1~2% 수준에 머문다고 추정한다. 애플, AMD 등 핵심 고객을 독점한 TSMC나 퀄컴, 테슬라 등을 고객사로 둔 삼성과 달리, 인텔은 아직 자사 물량 외에 뚜렷한 외부 고객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미 3나노 공정 양산을 시작한 경쟁사들과 달리 인텔의 18A 공정은 아직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어 기술 격차 또한 뚜렷하다.

정부 지원·신규 수주로 반전 계기 마련할까


인텔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정부 지원과 대규모 투자, 협력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인포메이션위크에 따르면 인텔은 미국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보조금을 바탕으로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에 1000억 달러(약 139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에는 경쟁사인 엔비디아가 인텔에 50억 달러(약 6조 9000억 원) 규모의 지분을 투자했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Arm 기반 칩을 위탁생산하는 계약을 맺는 등 신규 고객 확보에 일부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당장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금융 전문 매체 더 모틀리 풀은 공격적인 비용 절감과 대규모 외부 수주 확보가 먼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의미 있는 수익성 개선은 어렵다고 분석했다. 지금처럼 적자가 쌓이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인텔 파운드리의 대규모 구조조정이나 분사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이미 첨단 공정에서 시장의 신뢰를 확보한 TSMC와 삼성의 양강 구도가 굳건한 만큼, 인텔이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 의미 있는 경쟁자로 나서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