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무역 협상 중인 세계 각국, 중국의 물량 공세에 대응 주저
기록적 수출에도 이익 감소·디플레이션 심화…중국 경제 '속앓이'
기록적 수출에도 이익 감소·디플레이션 심화…중국 경제 '속앓이'

미국 판로가 막히자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로 눈을 돌려 기록적인 무역 흑자를 예고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두 가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전 세계는 '차이나 쇼크 2.0'의 공포에 휩싸이고, 중국 내부에선 이익 없는 성장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3일(현지시각) 진단했다.
멈추지 않는 수출 엔진, 새 시장서 신기록 행진
5개월 넘게 이어진 미국의 고율 관세에도 중국의 수출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외 시장에서 폭발하는 성장세를 보이며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지난 8월 인도의 대중국 수입액은 125억 달러(약 17조 원)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아프리카 수출 물량은 해마다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동남아시아 시장 판매액 역시 팬데믹 시기 정점을 넘어섰다. 이런 흐름은 신흥 시장에만 멈추지 않아, 일본과 한국, 대만을 포함한 선진 북아시아 시장 수출 또한 팬데믹 시기 고점을 웃돌고 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수출 급증은 세계 각국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자국 산업에 미칠 막대한 피해를 우려하면서도, 세계 절반 이상 국가의 최대 교역 파트너인 중국을 자극할 위험 사이에서 각국 정부의 셈법은 복잡해지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 반격에 나선 국가는 멕시코가 유일하다. 멕시코는 자동차, 부품, 철강 등 중국산 제품에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다른 국가들도 압박을 느끼고 있다.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인도 당국은 최근 몇 주간 중국과 베트남 등을 대상으로 한 상품 덤핑 조사 신청을 50건이나 접수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중국 판매상들이 청바지와 셔츠를 단돈 80센트에 수출하겠다고 공언하는 영상이 퍼지며 거센 반발이 일자, 무역부 장관이 직접 상품 과잉 공급을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쏟아지는 중국 제품…속수무책에 빠진 세계
하지만 이런 우려가 실제 무역 장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와 껄끄러운 관세 협상을 하는 국가들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과 또 다른 무역 전쟁을 벌이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중국은 과거 경제학자들이 자국의 해마다 성장률을 절반으로 떨어뜨릴 것이라 예측했던 미국의 고율 관세로부터 숨 쉴 틈을 얻고 있다.
가베칼 드래고노믹스의 크리스토퍼 베더 중국 리서치 부국장은 "각국의 소극적인 태도는 진행 중인 미국과의 무역 협상 때문일 것"이라며 "일부 국가는 세계 무역 시스템의 붕괴에 기여하는 것으로 비치고 싶지 않거나, 자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미국에 양보 카드로 제공하기 위해 대중국 관세를 보류하고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각국의 대응은 신중함을 넘어 소극적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올해 두 배 가까이 급증한 중국산 자동차 수입에 징벌 관세 대신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테무의 달마다 이용자가 1월 이후 143%나 급증한 칠레와 에콰도르는 전면 관세 대신 일부 저가 수입품에 목표 수수료를 조용히 부과하는 선에서 대응하고 있다. 브라질은 강력한 보복을 시사하면서도, 올여름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에 현지 생산을 늘릴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무관세 혜택을 주기도 했다.
중국은 외교 수단과 경제 위협을 함께 쓰며 각국의 보복 조치를 막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에 맞선 단결을 촉구하는 한편, 상무부는 멕시코를 향해 "다시 생각하라"며 보복 가능성을 명확히 경고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NATO) 동맹국들에 중국의 러시아 지원을 문제 삼아 최대 100%의 관세를 부과하라고 압박하는 등 지정학의 변수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기록적 수출의 역설…이익 줄고 내수 침체 악화
아이러니하게도 기록을 세운 수출 실적은 중국 기업들의 부나 내수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올해 첫 7개월간 중국 공업 기업의 이익은 오히려 1.7% 줄었다. 시진핑 주석의 '소모적 경쟁 방지' 운동에 따라 국내의 과잉 생산 설비를 해소해야 하는 제조업체들이 국외 시장에 헐값으로라도 물량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1970년대 개방 이후 가장 긴 기간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중국의 고질적인 디플레이션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창슈와 데이비드 취는 만약 미국이 동맹국을 규합해 중국을 압박한다면, 중국이 '장기 부동산 침체와 인구 고령화' 같은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가 한층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나아가 이런 수출 폭증은 소비 진작을 통해 내수 중심 경제로 전환하려는 중국 정부의 장기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은 중국이 소비를 경제 청사진의 핵심 기둥으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해 온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 등 외부의 시각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럼에도 시 주석이 '수출 드라이브'를 멈추지 않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이 미국 소비자 없이도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현재 90일간 유예된 최대 145%의 관세 폭탄을 두고 벌일 무역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계산이다.
가베칼 드래고노믹스의 아서 크뢰버 리서치 책임자는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보호무역주의는 종이호랑이가 됐다"며 "중국 수출업체들은 극도로 경쟁력이 있어 관세 충격을 일부 흡수할 수 있으며, 환적이나 저관세 국가로의 후반 공정 이전 등 수많은 우회로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베트남 수출 증가는 일부 상품이 미국의 관세를 피하려 환적 중심으로 활용되는 정황을 보여주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기술 혁신 제품 수요가 최근 수출을 이끌었으며, 유럽과 호주 같은 부유한 시장에서 새로운 구매자를 찾았다는 점도 중요한 배경이다.
대표 사례는 인도로, 지난 8월 대중국 수입액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러한 기록은 애플 공급망의 탈중국화 흐름 속에서도 핵심 부품과 장비는 여전히 중국에 의존하는 세계 공급망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지난 7월에만 중국 기업들은 약 10억 달러(약 1조3900억 원) 상당의 컴퓨터 칩과 수십억 달러어치의 휴대전화와 부품을 인도로 보냈으며, 올해 현재까지의 수출액은 2021년 전체 규모와 맞먹는다.
캄보디아 중앙은행의 체아 세레이 총재 역시 "우리는 중국에서 많은 것을 수입하는 동시에, 중국의 외국인 직접 투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중국에 의존하는 소규모 경제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사실 중국산 제품의 과잉 공급 우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이전부터 있었다. 과거 인도네시아 전임 대통령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200% 관세를 위협했고, 브라질은 중국산 철강 관세를 올렸으며, 베트남조차 현지 판매자를 위협하는 중국 온라인 소매업체에 임시 조치를 했다.
약세인 위안화 또한 중국 수출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맥쿼리 은행은 인플레이션 차이를 조정한 위안화의 실질실효환율이 2011년 12월 이후 가장 약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미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은 달러와 위안화의 추가 약세를 불러와 중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산 제품의 공세를 막기는 쉽지 않다. 대표로 전기차 수출은 미국과 캐나다의 징벌 관세와 금지 조치에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올해 첫 7개월 동안 비야디(BYD), 니오, 샤오펑 등 중국 업체들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슷한 약 190억 달러(약 26조4800억 원)가 넘는 전기차를 수출했으며, 유럽연합(EU)이 지난해 10월 관세를 부과했음에도 유럽은 여전히 최대 시장으로 남아있다.
앱솔루트 스트래지 리서치의 애덤 울프는 중국이 미국에 팔던 상품과 브릭스 국가에 수출하는 상품 간에 50% 가까운 중복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시장 전환이 쉬운 구조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은 다른 시장으로 진출해 점유율을 확보하는 능력을 보여줬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중국 수출이 남은 기간 동안 위축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