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절감·이익 극대화' 100년 공식의 함정…문제 정의부터 잘못돼
데이터·조직문화·인프라…고객 가치 창출 능력만이 생존 보장
데이터·조직문화·인프라…고객 가치 창출 능력만이 생존 보장

기업가이자 스탠퍼드대학교 객원교수인 스티브 블랭크는 최근 '파괴적 혁신을 보지 못하고 미래를 놓친 CEO들'이라는 글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그는 신기술이 기존 방식을 대체하며 수천 개의 마차 회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과거의 사례를 일깨우며, 현재의 경영자들이 비슷한 길을 밟고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경영 방식의 거의 모든 것이 빠르게 낡은 유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 해결의 첫 단추, 곧 '지금 기업이 풀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자체를 잘못 짚는 것이 이러한 시대착오의 주된 원인이다.
경영의 위기 앞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도 분주하다. 최근에는 '신경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파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인간의 뇌 활동을 정밀하게 분석해 경영 의사결정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에 실린 안토니오 랑헬 등의 논문을 보면, 이들이 제시하는 의사결정 틀은 ▷문제 정의 ▷대안별 가치 평가 ▷행동 선택 ▷결과 평가 ▷교훈 도출의 5단계로 나뉜다. 언뜻 보기에는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접근법이다.
하지만 오늘날 경영이 마주한 진짜 문제는 이 정교한 분석 과정의 뒷부분이 아닌, 가장 첫 단계인 '문제 정의' 그 자체에 있다. 신경경제학 연구가 주로 행동 선택이나 결과 평가 같은 후속 단계의 신경학 분석에 집중하는 동안, 경영자들은 정작 풀어야 할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뜻이다. 100년 넘는 시간 동안 경영의 핵심 과제는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199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널드 코스의 이론이 대표하는 주류 경제학의 기본 전제는 기업이 거래 비용을 줄여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설명이었다.
비용 절감에서 고객 가치 창출로
그러나 시대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디지털 기술이 열어젖힌 새로운 세상에서 기업 성장의 핵심 동력은 '비용 절감을 통한 효율 향상'에서 '더 큰 가치 창출을 통한 수요 확대'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단순 효율화가 아닌, 디지털과 AI를 써서 고객의 요구와 경험에 부가가치를 주는 혁신이 필수다. 디지털과 AI로 무장한 '가치 창출형 기업'들은 기존의 '이익 추구형 기업'과는 견줄 수 없는 수준의 가치를 고객에게 주기 시작했다. 동시에 고객들은 디지털을 통해 더 많은 가치를 기업에 요구할 힘을 얻었다.
중요한 통찰은 가치 창출형 기업이 단지 고객 만족에 그치지 않고, 결과적으로 훨씬 더 큰 수익을 올린다는 점이다. 가치 창출이 가져오는 잠재 이익의 규모는 낡은 효율화가 가져오는 이익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거대하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현재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에 이름을 올린 저명한 우량 기업 가운데 3분의 2가 시장 평균을 밑도는 실적을 내고 있다. 비용 절감과 이익 추구라는 낡은 틀이 더는 성장을 담보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AI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기업들은 이윤 증대를 넘어 고객 만족도, 시장 점유율,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 등 여러 면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AI의 빠른 확산은 이러한 격차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 것이다. 이미 '고객 가치 창출'이라는 새로운 목표에 눈을 뜬 기업에게 AI는 고객에게 더 큰 혜택을 주고 자사의 부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강력한 무기다. 반면, 여전히 옛 방식에 머무는 경영자에게 AI는 단지 인력을 줄이고 비용을 아끼는 또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접근은 해당 기업과 경영자 자신의 진부화를 재촉하는 자충수가 될 뿐이다.
AI 시대 생존을 위한 5가지 조건
그렇다면 AI 시대에 살아남고 번영하기 위한 기업의 조건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최소 다섯 가지 핵심 역량을 강조한다.
첫째, 조직 전반의 데이터와 AI 활용 능력이다. 단순히 기술 도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통합하는 체계부터 전사 차원의 AI 모델 개발·배포·재학습(MLOps) 환경까지 탄탄한 데이터 기반을 세워야 한다. 새로운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와 맞물리는 운영 방식의 전환이야말로 진정한 생존 요건이다.
둘째,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다. AI와 협업하고, 주도해서 변화를 이끌며, 평생 배운다는 자세가 조직의 DNA가 되어야 한다. 단순 반복 업무는 AI에 맡기고, 사람은 전략, 창의, 소통, 공감 같은 높은 차원의 역량에 집중하는 새로운 역할 나눔이 필요하다.
셋째, 외부 생태계와 연결하는 능력과 기반 시설 확보다. 다른 산업의 기업과 적극적으로 융합하고 국제 관계망을 활용하는 협력이 앞으로의 성장 조건이다. 더 나아가 AI 모델을 기업 전반으로 확장하기 위해 데이터센터, GPU 같은 컴퓨팅 파워를 미리 확보하는 기반 시설 전략 없이는 국제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AI 시대의 생존 방정식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고객 가치 창출 능력', '조직 내 AI 실행 능력과 데이터 통합 능력', '끊임없는 학습과 변화에 유연한 자세', '디지털 연결 능력', 그리고 'AI 기반 시설 확보'라는 다섯 가지 조건을 채워야만 앞날을 기약할 수 있다. 비용 절감이라는 낡은 공식만을 고집하는 기업은 자동화와 혁신의 파도에 밀려 급격한 경쟁력 하락을 피할 수 없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