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달러 보조금 쏟아부어 친환경선박 70% 석권...핵심부품 자립도는 30% 그쳐

미국 해군전쟁대학 중국해양연구소(CIMSEC)가 지난 7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대규모 보조금과 산업 통합을 통해 세계 조선시장을 장악했으나 핵심 부품 자립도와 생산성에서는 선진국과 격차가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조선시장 절반 이상 장악...LPG선 한국 첫 추월
중국 공업정보화부에 따르면, 중국 조선소들은 2024년 1억1305만 재화중량톤(DWT) 규모의 신규 수주를 확보해 전년보다 58.8% 늘었다. 2024년 중국의 글로벌 조선시장 점유율은 53.3%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선박집단(CSSC)이 1년간 건조한 상선 물량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이 생산한 총량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선종별로는 벌크선, 탱커, 컨테이너선 신규 수주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다.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분야에서는 한국을 처음 추월해 48%의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한국은 46%로 뒤처졌다.
다만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는 한국이 62%의 점유율로 여전히 선두를 지키고 있다. 보고서는 "중국이 품질과 생산능력 개선을 통해 격차를 좁히고 있다"고 분석했다.
친환경선박·LNG선 기술 급성장
중국 조선업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의 약진이다. 2024년 1~9월 중국 조선소들은 전 세계 친환경 선박 수주의 70%를 차지했다. 대체연료 선박의 경우 2024년 신규 수주의 76.9%를 중국이 가져갔다.
보고서는 "중국이 독자 개발한 순수 전기 컨테이너선, 수소연료전지 선박, 메탄올 연료 엔진 등이 시장에 나오고 있다"며 "이는 중국 조선업의 혁신 역량이 크게 커졌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평가했다.
LNG 운반선 생산 능력도 크게 향상됐다. 2019년까지만 해도 중국에는 대형 LNG 운반선을 생산할 수 있는 조선소가 단 한 곳뿐이었으나, 현재는 여러 조선소가 이를 건조할 수 있게 됐다.
유럽상공회의소가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18개 주요 선종 가운데 14개 분야에서 시장 선두를 차지했다. 유럽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이 2015년 이후 중국 경쟁사에 시장 점유율을 빼앗겼다고 답했으며, 80%는 중국 기업들이 대체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응답했다.
핵심 부품 자립도 30%...생산성은 일본의 7~17% 수준
화려한 성장세에도 중국 조선업의 한계는 분명하다. 중국이 지난 2023년 완성한 첫 번째 크루즈선의 부품 현지화율은 30%에 그쳤다. 엔진, 프로펠러 등 핵심 부품은 여전히 외국 기술에 기대고 있다.
보고서는 "중국 조선소 노동자의 생산성은 일본 노동자의 7~17% 수준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케이블 부설선, 시추선, 럭셔리 요트 등 복잡한 선박 건조에서도 여전히 뒤처진 것으로 평가됐다.
유럽 기업 설문조사에서는 절반이 시장 점유율 손실을 보고했지만, 중국 경쟁사가 동등하거나 더 높은 수준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26%에 그쳤다.
한 연구는 중국 정부가 2019년 한 해에만 산업 보조금으로 2310억 달러(약 327조 원)를 쓰고도 생산성 향상이나 특허 증가, 수익성 개선에서 통계적 증거가 제한됐다고 밝혔다. 2013년까지 조선업에만 900억 달러(약 127조 원)의 보조금을 쏟아부었다.
보고서는 "중국은 선박 설계 연구 논문 발표에서 2018년께 선두가 됐고 2000년 이후 전체 출판물의 18.11%를 차지했지만, 인용-출판 비율은 다른 주요 발표국들보다 낮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자율무인잠수정, 해저 무선통신, 공기불요추진(AIP), 자율시스템 운용 기술, 선진 로봇공학 등 분야에서는 최소 5년간 고품질 연구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했다"고 덧붙였다.
군민융합으로 해군력 동시 강화
'제조 2025' 정책은 '군민융합' 정책과 맞물려 중국 해군력 증강에도 기여하고 있다. 중국의 주요 상선 조선소들은 동시에 군함 건조도 맡고 있으며, 위성사진에서는 항공모함 같은 대형 전투함이 상선과 나란히 건조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미국 해군정보국(ONI)이 2020년 작성한 평가서는 "중국 설계국들이 미국 조선소와 견줄 만한 현대 소프트웨어, 설계 관행, 기계, 선박 건조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며 "중국 해군 함정의 거의 모든 무기와 센서가 자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중국은 더는 러시아나 다른 나라의 주요 해군 함정 시스템에 기대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부는 2018년 보고서에서 중국이 해군 가스터빈 기술에서 거의 완전한 자급자족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다만 보고서는 "중국이 여전히 외국 추진 기술을 손에 넣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어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3~4년 선박 수주 포화...시장 지배력 이어질 듯
중국 조선소 대부분이 앞으로 3~4년간 수주 물량으로 가득 찬 상태여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당분간 유지하거나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 작성자인 조지타운대학 안보학 석사과정의 댄 카츠는 "중국 조선업의 상업 지배력은 군사 관련 자본 투자와 연구개발에 쏟을 수 있는 풍부한 자원을 제공한다"며 "더욱 발전한 조선소들은 일부 해군 유지보수와 수리 작업도 처리할 수 있어, 해군 조선소들이 더 복잡한 임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시장에서는 중국의 공격적 투자와 시장 확대가 전기차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내권화(involution)' 현상, 즉 지나친 경쟁 때문에 일어나는 가격 전쟁과 수익성 악화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