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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나심 탈레브 "美 부채, 피할 수 없는 '화이트 스완'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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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나심 탈레브 "美 부채, 피할 수 없는 '화이트 스완' 재앙"

"진짜 위험은 예측 불가능한 '블랙 스완' 아닌, 눈앞의 '부채 폭탄'"
"강세장 속 '생존' 위한 헷지 필수...AI도 기적은 아니다"
'블랙 스완' 이론의 창시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미국의 부채 위기를 '화이트 스완'으로 규정하며 시장 붕괴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블랙 스완' 이론의 창시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미국의 부채 위기를 '화이트 스완'으로 규정하며 시장 붕괴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사상 최고치 랠리를 이어가던 미국 증시에 '월가의 이단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날카로운 경고를 던졌다. '블랙 스완' 이론의 창시자인 그는 시장의 환호 뒤에 가려진 미국의 막대한 부채 부담이 '화이트 스완(White Swan)', 즉 예측 가능한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당장 시장 붕괴에 대비한 '보험'에 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헤지펀드 유니버사 인베스트먼트의 나심 탈레브 과학자는 8일(현지시각)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열린 '그리니치 경제 포럼(Greenwich Economic Forum)'에 참석해 현재 시장 상황을 날카롭게 진단했다. 그는 기업들의 이익 급증과 증시 랠리라는 낙관적 지표에도, 대부분의 사람이 애써 외면하는 명백한 위험이 시스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탈레브가 지목한 '화이트 스완'의 실체는 바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국의 국가 부채다. '화이트 스완'은 그가 2007년 저서에서 제시한, 발생 확률은 극히 낮지만 한번 터지면 엄청난 충격을 주는 '블랙 스완'과는 개념이 다르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외면하는 '예견 가능한 위험'을 뜻한다. 그는 이 문제가 더는 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단언했다. 탈레브는 "우리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부채 문제로 향하고 있으며, 기적이 없는 한 이를 피할 방법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이자 상환이 예산에서 가장 큰 항목이 되면 곤경에 처한 것이다. 개인, 기업, 국가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해당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여 위기의 본질을 명확히 했다. 실제로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상환 비용은 2025년 국가 예산에서 국방비를 넘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여, 역사상 처음 있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지금 가장 큰 위험은 이미 누구나 알지만 대처하지 않는 사실"이며, 미국은 파국을 피하기 어려운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생존 없는 수익은 없다"...강세론과 헷지의 결합

역설적이게도 유니버사 인베스트먼트는 주식 시장에 대해 여전히 강세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탈레브는 이러한 낙관론이 반드시 위험 회피(헷지) 전략과 결합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가 자문하는 유니버사 인베스트먼트는 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 수익을 내는 '롱 볼러틸리티(Long Volatility)' 전략으로 유명하다. 그의 투자 철학은 "시장에 대한 극단적인 강세론과 헷지에 대한 강박적인 필요성의 조합"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시장 상승장에서 수익을 추구하면서도,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붕괴에서 살아남을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위험 관리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거와 같이 예측 불가능한 충격을 뜻하는 '블랙 스완'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탈레브는 흥미로운 관점을 내놓았다. 그는 "현재 상황에서 예측 불가능한 블랙 스완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은 긍정적인 사건일 것"이라며 "갑작스럽게 미국의 부채가 의미 없어지는, 그런 기적적인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상황을 뒤집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부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기적이야말로 지금 세상의 유일한 '블랙 스완'이라는 역설이다.

AI와 이민 정책, 또 다른 '화이트 스완'


기적을 이룰 후보로 꼽히는 인공지능(AI)에 대해서도 그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탈레브는 "AI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기술 자체가 '블랙 스완'처럼 낮은 확률로 큰 충격을 주는 위험, 곧 '테일 위험(tail risk)'을 안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과거 식기세척기 같은 기술은 인간의 노동력을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쪽으로 이끌었지만, 오늘날 AI는 최고의 고숙련 직군(skilled labor)을 위협하며 아래로 내려가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AI가 가진 기회와 위협의 양면성을 드러낸 대목이다.

탈레브는 미국의 또 다른 '화이트 스완'으로 이민 정책 변화, 특히 외국 인재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꼽았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문직 취업비자(H-1B)에 대한 강경한 정책이 미국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오히려 H-1B 비자 신청자에게 보조금을 줘야 할 상황"이라며, 만약 숙련된 이민자 유입이 막힌다면 미국의 혁신과 성장에 미치는 타격은 바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탈레브가 투자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헷지 없는 낙관은 위험하며, 진정한 위험 관리는 생존(survival)에 바탕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강세장과 헷지 필요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위험 관리의 핵심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월가의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서늘한 잠언과 같다. "시장이 붕괴할 때 살아남지 못하면, 당신은 절대 돈을 벌 수 없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