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청 해체·소형조선소 지원 58% 급감, 조지아 한국기업 급습에 필라델피아 조선소 현대화 흔들

워싱턴먼슬리는 9일(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8개월간 조선산업 지원 조직을 축소하고 예산을 삭감하면서 산업 부활 가능성을 오히려 차단했다"고 지적했다.
국가안보회의 조선청 해체, 예산국으로 격하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월 국가안보회의(NSC) 산하에 조선청(Office of Shipbuilding)을 신설하며 해양 전략 핵심 기구로 선전했다. 그러나 이 조직은 출범 수개월 만에 사실상 해체됐다.
마이크 월츠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 '시그널게이트' 스캔들에 휘말려 경질되면서 조선청 책임자였던 이언 베니트 국장도 사임했다. 이후 트럼프가 NSC 인력을 감축하면서 조선청 직원 7명 가운데 5명이 연달아 떠났다. 해양 전략이 더는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신호로, 조선청은 NSC에서 제외돼 예산관리국(OMB)으로 옮겨졌다.
같은 기간 미국 해운을 직접 지원하는 연방기관인 해사행정청(MARAD)은 청장 부재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영구 리더십 없이 MARAD는 우선순위 설정과 자원 확보, 업계 이해관계자들 신뢰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다.
정부책임국(GAO)은 최근 보고서에서 "MARAD가 측정 가능한 목표를 수립하지 않았고 프로그램 성과를 평가하지 않아 해양 선단 확대에 프로그램이 얼마나 효과를 내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소형조선소 지원금 2100만→875만 달러로 급감
트럼프 행정부 최근 예산안은 해양 역량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소형조선소 지원 프로그램(Small Shipyard Grant Program) 예산이 875만 달러(약 124억 원)로 책정돼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 당시 2100만 달러(약 298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 외국 조선소들과 경쟁하는 미국 조선소들에게 이 지원금은 크레인과 용접기 같은 장비를 현대화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금원이다. 지원금 신청액은 꾸준히 배정 가능 예산의 5배를 넘어섰다.
외국 조선소들이 정부 지원을 대폭 받는 상황에서 이 프로그램 예산을 줄이는 것은 효과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후퇴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는 평가가 증권가에서 나온다.
선원 인력난 심각한데 해사학교는 방치
미국은 현재 수천 명의 선원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행정부는 해사 인력 양성 체계를 강화하는 일에 거의 손을 놓았다.
뉴욕 킹스포인트에 있는 미국 상선사관학교(U.S. Merchant Marine Academy)는 해상 수송 장교를 양성하는 주요 기관이다. 숀 더피 교통부 장관은 학생들이 몇 달째 온수 없이 샤워하는 상황, 무너지는 도서관, 곰팡이가 핀 기숙사 같은 문제를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행정부는 학교를 안정시키는 대신 3개 주요 보직을 모두 공석으로 남겨뒀다. 다음 세대 선원을 길러내는 이 학교가 더욱 뒤처질 위험에 빠지면서 해사 부활이 의존하는 인력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
한국의 1500억 달러 투자 약속, 조지아 급습으로 위기
트럼프 행정부의 불규칙한 정책은 외국 동맹국들의 조선 투자마저 위축시키고 있다. 한국 최대 조선사 가운데 하나인 한화오션이 지난해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인수한 뒤, 한국 정부는 미국 조선소 현대화와 미국 노동자 훈련에 상당한 투자를 할 준비를 보였다.
실제로 최근 양자 무역 협상에서 한국은 미국 조선산업에 1500억 달러(약 212조 원)를 투입하겠다는 비구속 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곧바로 이 합의를 훼손했다.
행정부가 조지아주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배터리 공장에 대규모 이민 단속을 벌이면서 외교 긴장이 고조됐고, 조선 투자 미래에 상당한 의구심이 제기됐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 사건이 한국의 대미 조선 투자 의지를 크게 꺾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상풍력·식량원조 중단으로 선박 수요 급감
트럼프의 다른 정책들도 조선 수요를 잠식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청정에너지 수요 증가로 미국 조선소들은 해상풍력 산업이 필요로 하는 특수 선박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텍사스 조선소는 미국 최초 풍력터빈 설치선을 완성했고, 루이지애나 조선소는 해상 풍력단지를 육상 전력망에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 매설선을 인도했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새로운 산업이 어떻게 미국 조선소에 안정된 일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줬다. 그러나 트럼프가 해상풍력 프로그램을 철회하면서 이 흐름이 급격히 중단됐다. 프로젝트 취소와 지연으로 조선소들은 이제 이들 선박 수요 감소에 직면해 있다.
트럼프가 해외 식량원조를 동결한 결정은 미국 선박의 안정된 화물을 없앴다. 이 화물은 해외 인도주의 지원을 제공하면서 선박을 가동시키고 국내 선원들의 고용을 유지했다. 대신 중요한 식량 원조가 미국 전역 창고에서 썩어가는 동안 식량 원조를 운송하던 선박들은 정박을 강요당했고 선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중국 추격 불가능, 군사 대비 태세도 약화
선원 일자리 축소는 군사 대비 태세 약화로 이어진다. 군은 자체 해상수송 함대를 보완하려고 상선 선원과 선박에 의존한다. 이 인력 풀이 줄어들면 군사 대비 태세도 약화된다.
트럼프는 중국이 건조하거나 소유한 선박이 미국 항구에 기항할 때 높은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조치로 중국 선박이 신규 건조 시장에서 차지하는 몫은 줄었으나, 미국 국내 역량을 키우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연방정부의 일관된 수요와 공급 측면 투자 없이 항구 수수료만 잔뜩 늘려봐야 새로운 해사 역량은 거의 늘어나지 않는다는 분석이 월가에서 나온다.
역사를 보면 미국 조선소들은 해사 혁신 시기에 번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 석탄 보급소 의존을 줄이려고 석유 추진 선박을 개발했다. 베트남전 초기에는 화물 적재와 하역 속도를 높이려고 컨테이너화를 개발했다. 1960~70년대에는 대형 선박이 소형 선박을 갑판에 싣고 다니는 새로운 복합 운송 개념인 '라이터 어보드 시프'(lighter aboard ship) 같은 새 선박을 설계하고 건조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도 미국이 건조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제안한 탈탄소화 규정에 따라 앞으로 10년간 친환경 선박 주문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트럼프는 미국 조선소들이 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대신, IMO 회원국들을 압박해 규정을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조선 분야에 진입할 잠재 기회를 없애는 것이다. 새로운 해사 혁신 없이 미국은 중국이 굳게 장악한 현재 조선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싱턴먼슬리는 "중국이 수십 년간 정부 지원과 산업 계획을 통해 조선 강국이 된 반면, 트럼프 접근법은 정반대"라며 "경제 안보와 국가 방위에 필수인 산업이 명확한 방향이나 안정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트럼프가 미국이 곧 선박을 건조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정책이 부활 가능성을 더 낮췄다"고 지적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