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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들 "AI 진짜 위협은 '그저 그런 자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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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들 "AI 진짜 위협은 '그저 그런 자동화'"

생산성 향상 없이 일자리만 대체…셀프 계산대처럼 서비스 질 하락 부작용 속출
빅테크 독점·정보생태계 오염 등 불평등 심화…사회안전망·재분배 정책 시급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AI의 진짜 위협으로 생산성 향상 없이 일자리만 대체하는 '그저 그런 자동화'를 지목했다. 이러한 기술이 셀프 계산대처럼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빅테크 독점과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다.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AI의 진짜 위협으로 생산성 향상 없이 일자리만 대체하는 '그저 그런 자동화'를 지목했다. 이러한 기술이 셀프 계산대처럼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빅테크 독점과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다.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인공지능(AI)의 미래를 둘러싼 담론이 초지능의 등장과 실존적 위협에 집중되는 가운데, 세계적인 경제 석학들은 기술의 '어중간한 발전'이 초래할 현실적 위협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10일(현지시각), 이들이 생산성 도약 없이 고용 시장만 파괴하는 '그저 그런 자동화'의 확산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의 대런 아세모글루 교수가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AI가 모든 사람의 업무를 대체하는 미래가 아니다. 그 정도로 강력한 AI는 비록 불안감을 주더라도, 막대한 생산성을 이끌어 인류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끔찍하게 여기는 현상은 기업에는 인력 감축의 명분을 주지만, 사회 전체의 실질적인 생산성을 높이지는 못하는 '그저 그런 자동화'가 널리 퍼지는 것이다. 이런 '소소한 자동화'는 기업의 단기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될지 모르나, 고용 감소, 서비스 질 하락, 현장 노동자 소외라는 심각한 부작용만 남길 수 있다.

아세모글루 교수는 "과대광고에 편승해 자동화해서는 안 될 많은 것까지 자동화한다"며 "이는 생산성 향상도 얻지 못하고 일부 사업에는 오히려 해를 끼치면서, 의미 있는 사람의 노동 기회만 빼앗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MIT 연구팀 등의 발표는 이를 뒷받침한다. AI 시범 사업의 95%가 눈에 띄는 생산성 개선 없이 끝났는데, 이는 많은 AI 도입이 실제 기업의 업무 흐름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실로 다가온 '그저 그런 자동화'


이런 현상은 최신 AI 기술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1980년대 중반 처음 나온 식료품점 셀프 계산대는 점원 한 명이 여러 계산대를 관리할 수 있다는 잠재력 때문에 빠르게 확산했다. 식품산업협회(FMI)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식료품점의 99%가 셀프 계산대를 운영한다. 그 결과, 미국 노동통계국은 2019년에서 2023년 사이 계산원 일자리 약 30만 개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영국 역시 지난 10년간 소매업에서 약 4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막대한 일자리를 대체했음에도 그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 초기 설치 비용과 유지보수 부담, 절도 문제 증가 탓에 타겟,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업체는 오히려 셀프 계산대를 줄이는 추세다. 고객들 역시 잦은 오류에 불만을 나타내면서 사용률이 2023년 44%에서 지난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AI,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키다


한편 또 다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컬럼비아대의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는 AI가 부르는 사회 불평등, 노동 수요 감소,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의 독점을 가장 심각한 구조 문제로 꼽는다. 그는 AI 혁신이 고부가가치 자본과 데이터를 가진 소수의 기술 대기업에만 쏠리면서, 평범한 노동자와 개발도상국은 시장에서 소외된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2025년 기준 세계 상위 10% 가구가 전체 부의 67%를 독점하는데, AI가 부의 편중을 더욱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AI를 활용한 기업의 독과점 심화, 권력 집중, 고용 없는 성장, 저소득국 노동력 가치 하락 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스티글리츠 교수는 AI와 디지털 플랫폼이 정보의 질을 떨어뜨리고, 거짓 정보와 여론 조작을 퍼뜨릴 위험도 중요하게 본다. AI가 대량 생산하는 콘텐츠가 본질에서 정보의 품질을 해치며, 이용자들이 진실과 허위를 가리기 어려워지는 막대한 사회 비용을 낳는다고 분석했다.

물론 모든 전문가가 기술 자체를 나쁘게만 보는 것은 아니다. 토론토 대학교의 크리스티나 매켈러런 경제학 교수는 "문제는 기술에 내재한 특성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배치하고 활용하는지에 관한 사회와 경제의 맥락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스탠퍼드 대학교의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 등과 함께 진행한 연구를 보면, 기업의 AI 도입 후 생산성은 단기에 하락했다가 점차 오르는 'J-곡선' 형태를 보였다. 이는 기술이 조직에 적응하고 직원들이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AI가 인류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스티글리츠, 아세모글루 같은 경제학자들은 단기에는 기술 보급 속도를 조절하고, 장기에는 새로운 사회안전망과 재분배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독과점 방지, 데이터와 정보에 공평하게 접근할 권리 보장, 저소득층을 위한 일자리 전환 프로그램 강화 같은 사회 대응이 시급하다.

기업 차원에서도 근본에서 되돌아봐야 한다. "무작정 자동화 도입이 아닌, 각 조직만의 강점과 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전략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처럼 AI의 진정한 위협은 공상과학 영화 속 초지능의 등장보다, 생산성은 제한적이면서 일자리만 줄이는 '그저 그런 자동화'가 퍼질 때 우리 사회가 마주할 실질 비용과 불평등 구조의 악화에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