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양산 목표로 3천 개 일자리 창출…애플·엔비디아 등 핵심 고객사 확보
"반도체 지역화 시대" 선언…韓·美·베트남 잇는 세계 생산망 재편
"반도체 지역화 시대" 선언…韓·美·베트남 잇는 세계 생산망 재편

앰코의 이번 대규모 투자는 전적으로 TSMC가 이끌었다. 앰코의 기엘 루텐 최고경영자(CEO)는 "당초 훨씬 작은 규모의 지원 시설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계 최대 칩 파운드리인 대만 TSMC가 애리조나 팹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자, 앰코는 이를 중요한 기회로 판단했다. 루텐 최고경영자는 "TSMC의 대규모 투자와 지역 내 고객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에 따라 투자를 대폭 늘리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전략적 판단에 따라 사업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단계에 투입할 초기 투자액 20억 달러(약 2조 8600억 원)는 2단계까지 합쳐 총 70억 달러(약 10조 원)로 세 배 이상 늘었다. 이번 주 공식적으로 첫 삽을 뜬 새 공장의 1단계는 이르면 2028년부터 양산에 들어가며, 이를 통해 약 3000개의 새 일자리가 생길 전망이다.
피닉스에 들어설 새 포장 공장은 TSMC 애리조나 파운드리 인근에 자리해 애플과 엔비디아 등 핵심 고객사의 최첨단 반도체를 직접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루텐 최고경영자는 "이번 증설은 고객사들의 확고한 약속 덕분"이라고 강조하고 "투자가 균형 잡히고 적절한 규모로 유지되도록 사업의 각 단계를 매우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화 시대 저물었다"…공급망 재편 나선 반도체 업계
루텐 최고경영자는 반도체 산업의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 세계 분산형 반도체 제조 시대가 끝나고, 각국이 대만과 한국의 성공 모델을 따라 자국 안에 완전한 칩 생태계를 꾸리려는 '지역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완전한 현지 공급망을 갖추려는 움직임을 이끌고 있다"고 덧붙였다.
앰코의 세계 확장 전략은 이러한 시대 변화를 정면으로 반영한다. 한국은 연구개발(R&D)과 제조의 핵심 거점 역할을 유지한다. 베트남은 깊어지는 공급망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중국을 대체할 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생산 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에서는 포르투갈 사업장이 자동차와 산업 분야 고객을 전담한다. 그리고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는 애리조나와 텍사스를 잇는 '반도체 회랑'의 첫 대규모 공장으로 지역 반도체 성장의 중심축이 될 전망이다.
루텐 최고경영자는 "높은 규제 비용과 엄격한 환경 규제 탓에 캘리포니아 같은 전통 제조업 중심지가 새로운 대규모 투자를 끌어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 남부 주들이 차세대 반도체 투자의 유망한 지역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TSMC와 '기술 동맹'…CoWoS 등 첨단 패키징 협력
애리조나 투자의 핵심에는 TSMC와의 강력한 기술 동맹이 있다. 두 회사는 지난해 10월 4일, 미국 시장 안에서 운영 통합을 강화할 목적으로 애리조나에 첨단 패키징과 테스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맺고 협력 관계를 공식화했다.
협약에 따라 TSMC는 앰코의 애리조나 새 공장을 이용해 자사 피닉스 팹에서 생산한 칩을 쓰는 고객에게 '원스톱' 첨단 패키징 해결책을 제공한다. 또한 두 회사는 TSMC의 독보적인 기술인 통합 팬아웃(InFO)과 칩온웨이퍼온서브스트레이트(CoWoS) 기술을 포함한 최첨단 패키징 분야에서도 힘을 합쳐, 고성능 차세대 반도체 수요에 함께 대응할 방침이다.
루텐 최고경영자는 "애리조나가 첨단 공정 개발과 칩 제조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지만, 대만은 앞으로도 세계 반도체 혁신의 중심지로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대만이 지닌 기술 전문성, 폭넓은 공급 업체 기반, 대규모 혁신 역량의 조합은 계속해서 업계의 세계적인 기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앰코가 TSMC와 손잡고 단행하는 이번 대규모 투자는 급변하는 세계 반도체 지형도에 대응하는 전략적 행보다. 미국의 첨단 칩 생산 생태계를 완성하고 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