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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LG전자, 인도 '외국인 퇴직연금' 의무 가입 소송서 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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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LG전자, 인도 '외국인 퇴직연금' 의무 가입 소송서 패소

델리 고법 "경제·사회적 고려한 합리적 구분…헌법 위배 아냐"
인도 진출 다국적 기업, 사회보장 전략 재조정 불가피…부담 가중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LG전자가 인도 정부의 외국인 근로자 연금 의무 가입 조치에 반발해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델리 고등법원은 5일(현지시각), 해당 조치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하며 LG전자 인도법인(LG Electronics India Pvt. Ltd.)과 스파이스제트(SpiceJet)가 제기한 청원을 모두 기각했다. 이번 판결로 인도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은 외국인 직원의 급여 구조와 사회보장 전략을 재조정해야 할 인력 운용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델리 고등법원 합의부(데벤드라 쿠마르 우파디아야 고등법원장, 투샤르 라오 게델라 판사)는 인도 중앙정부와 근로자공제기금기구(EPFO)를 상대로 제기된 이번 소송에서, 중앙 정부가 '1952년 직원 연금 기금(EPF) 제도'를 인도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까지 확대 적용할 법적 권한이 있다고 명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인도인 근로자와 국제 근로자 간의 구분이 임의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것이 "경제와 사회를 고려한 것"이라며, 인도 헌법 제14조(평등권)에 따라 헌법에 비춰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우리는 위에서 해당 고시에 법률상 결함이 없다고 이미 판단했다"고 밝혔다.

"임금 상한 없이 의무 가입"…차별인가, 합리적 구분인가

이번 분쟁은 인도 정부가 2008년 10월 1일(GSR 706(E))과 2010년 9월 3일(GSR 148(E)) 발표한 두 차례의 고시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이 고시를 통해 EPF 제도에 제83조를 신설하고 대체하여 '국제 근로자'를 정의하고, 사회보장 협정(SSA)에 따른 '제외 근로자'가 아닌 모든 외국인 근로자는 고용 시작일 즉시, 임금 수준과 관계없이 EPF에 의무 가입하도록 했다.

LG전자와 스파이스제트는 이 규제 체계에 이의를 제기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제83조가 인도인과 외국인 근로자를 국적에 따라 불법 구별한다고 주장했다. 청원인들은 월 1만 5000루피 이상을 버는 인도인 근로자와 달리, 외국인 근로자는 급여와 상관없이 EPF에 기여해야 하는 점을 불평등하다고 문제 삼았다. 또한, 통상 인도에서 단기 파견 근무를 하는 국외 거주자들에게 근로 중단과 귀국 후에도 58세가 되어야만 연금 인출을 허용하는 규정은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EPF법(근로자공제기금법)은 국적에 따라 근로자를 분류할 근거를 제공하지 않으므로, 정부가 위임입법의 한계를 초과했다고 강조했다.

법원 "국제 조약 이행 위한 주권적 조치"…LG측 주장 일축


그러나 델리 고등법원은 두 사안을 병합 심리한 끝에, 해당 고시들이 EPF법 제5조와 제7조에 따른 위임 입법의 범위 내에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헌법 제14조의 '합리적 차별' 심사 기준을 적용하며 "이 사안의 구분은 경제상 필요성에 기반한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고려는 카르나타카 고등법원이 내린 판결에는 빠져있다"고 지적, 다른 고등법원의 반대 견해에 명확하게 동의하지 않았다.

법원은 특히 제83조가 사회보장 협정(SSA)을 통한 인도의 국제 조약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판결문은 "제83조는 인도의 국제 조약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추가된 것이며, 이러한 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국가의 고유 권한"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원은 이 조항을 무효화하는 것이 "다른 국가들과 맺은 인도의 SSA 체계를 실질 훼손하여, 해외 인도 근로자들을 위한 상호 사회보장 혜택(Reciprocal Benefits)의 기반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58세 인출 제한 규정도 이는 제도의 장기 퇴직금 성격에 부합하므로 국제 파견자의 근무 기간이나 귀국 사정과 무관하게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델리 고등법원은 2008년과 2010년의 핵심 고시가 유효한 이상, 이에 근거하여 EPFO가 내린 모든 징수 통지와 회계 조사 등의 후속 집행 조치 역시 법률상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LG전자와 스파이스제트가 제기한 행정소송(사건명: SpiceJet Ltd. vs Union of India & Anr., W.P.(C) 2941/2012)은 최종 기각됐다.

이번 판결은 중앙정부의 위임입법 권한을 강화하고, 사회보장 규제의 국제 일관성을 인정한 선례로 평가받는다. 법조계는 인도 진출 기업들이 현지 법인에서 근무하는 모든 외국인의 EPF 적용 여부를 다시 살피고, 근로자들 역시 자국과 인도 간 SSA 체결에 따른 퇴직금 이전(portability) 가능성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한국은 2011년 한-인도 사회보장 협정이 발효된 바 있어, 인도 주재 한국 국적 근로자들이 EPF 가입 면제 자격이 있는지를 자세히 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